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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를 위한 노인문화예술교육, 진천 노인음악연구소

2021-10-19

문화 문화놀이터


문화예술 소통과 공감의 통로 [ㅊ·ㅂ]
미래를 위한 노인문화예술교육, 진천 노인음악연구소
'진천 노인음악연구소 이지혜 대표'

    최근에 동료들과 고민하는 지점이 있다, ‘지금의 나는 어떻게 만들어진 사람인가?’ 지금의 나를 만든 이유는 수천, 수만 가지가 있을 테지만 우리는 어린 시절을 주목해보기로 했다. 내가 높은 나무 밑을 지나는 것을 무서워하는 이유는 9살 때 읽은 책에서 치타는 높은 나무에서 뛰어내려 사냥을 한다는 문장을 읽고 나서부터였다. 영성이가 가진 가장 선명한 기억 중 하나는 어머니의 해치백 뒷자리에 누워 풍경을 보고 있는 장면이었는데, 그래서인지 여전히 차 중에서 해치백 모델을 가장 좋아한다. 한 명도 빼놓지 않고 모든 반 친구들의 사진을 찍어 싸이월드에 올리던 승균이는 사람을 담는 사진작가가 되었다. 당연한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과거를 적어보면 더욱 강렬하게 느낄 수 있다. 지금의 나를 이룬 상당 부분이 성장 과정에 있었음은 자명한 사실이다.
    충북 진천군에서 노인음악연구소를 운영하는 이지혜 대표 역시 너무나 자연스럽게 시작했다고 말한다. 그녀의 어머니는 4남매 중 막내였고, 아버지는 7남매 중 막내였다. 그리고 그녀는 두 분 사이에서 또 막내로 태어났다. 친척 어른들과 나이 차이가 엄청났지만, 집안의 막내는 사랑과 존중을 듬뿍 받으며 자랐다. 보답하고 싶었다. 플루트를 전공했으니 음악을 통해서 나의 마음을 표현할 수 있을까? 고민의 종착지는 문화예술교육이었다. 처음에는 20대부터 50대까지 다양한 연령대를 가진 참여자들과 플롯 앙상블을 결성했다. 교육자로서 참여자 수준의 중간치를 맞추려 노력했지만, 상대적으로 젊은 연령대가 답답해하는 것이 느껴졌다. 나이에 따라 팀을 나누자는 제안을 받기도 했다. 당황스러웠다. 나이가 조금 차이 나는 것일 뿐인데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보는구나. 융합하기 힘들구나. 젊은 사람들은 어딜 가든 보살핌을 받을 수 있지만, 나이를 먹을수록 힘들구나. 노인을 대상으로 한 문화예술교육에 대해 본격적으로 생각하게 된 계기였다. 



    사회예술 강사로 5년 동안 활동했다. 전국의 노인복지관을 순회하며 노인을 대상으로 예술교육을 진행했다. 문화예술을 매개로 한 교육이 노인들에게 미치는 영향력을 생생하게 체험했다. 웃음이 많아지고 대화도 많아진다. 독일 등 외국에서는 이미 치매 예방 등 긍정적인 효과를 담은 논문도 발표되고 있었다. 노인들도 보살핌을 받을 곳이 생겼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벅찼다. 하지만 동시에 아쉬움도 있었다. 많은 강사가 과목에 대한 전문성 없이 강단에 서거나 노인이라는 교육 대상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이 교육하고 있었다. 한 복지관의 결과 발표회는 마치 어린이집처럼 진행되고 있었다.
    아쉬운 건 이뿐이 아니다. 교육 수요 조사를 할 때마다 항상 상위권을 기록한 악기는 어르신들의 로망, 피아노였는데 정작 피아노를 이용한 교육이 없었다. 피아노를 이용하려면 임대를 해야 하는데, 임대한 피아노를 펼치고 접고, 보관할 공간과 인력이 부족했다. 할 수 없이 멜로디언으로 대체하거나 종이 피아노를 만들기도 했다. 공간이야 그전에도 몇 번 운영을 한 적이 있었다. 개인 작업실, 혹은 지역민들과 함께 프로그램을 운영할 작은 집을 임대하기도 했다. 하지만 피아노를 놓기엔 너무 좁았다. 공간에 대한 열망은 더욱 커졌고 중앙 시장 내에 ‘문화공간 자리’를 오픈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드디어 염원하던 피아노 수업 <내 생에 피아노 한 번>을 진행하고 있다. 교육 대상인 ‘노인’에 관한 공부도 늦추지 않고 있다. 교육자가 아닌 예술가 출신이기 때문에 교육 방식에 대한 학습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청주 교대에서 공부하던 중, 교육 방식보다는 교육 대상에 관한 공부가 더욱 간절해져서 경희대학교 동서의학대학교에 진학했다. 고령 친화 서비스, 노화 정책 등 교육 대상뿐 아니라 사회적인 문제들과 연결 지어 생각할 수 있게 되었다.
    이지혜 대표는 다양한 방식으로 노인문화예술교육의 길을 열어가고 있다. 문화예술을 즐기는 어르신분들도 지원 사업에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무료가 아닌 예술 교육도 수요가 있을까?’라는 물음이 생겼다. 그리고 이번에는 그녀의 가장 큰 장기인 ‘플루트’를 사용하기로 했다. 월 회비는 3만 원으로 저렴했지만, 악기를 직접 구매해야 했다. 약 45만 원에 달하는 악기를 구매하며 자신에게 투자할 수 있는 어르신들은 몇 분이나 계실까? 대부분의 노인들이 자기 자신에게 투자하지 않는다는 가설을 검증하고 싶었던 것이다. 열 분의 회원이 모였고 ‘청춘 어게인’이라는 이름을 지었다. 시행착오를 거치기도 했지만 청춘 어게인은 순항 중이다. 코로나를 맞이해서는 줌(ZOOM) 수업으로 전환하여 진행하고 있다. 처음에는 회원분들이 접속하는 데에만 40분이 걸렸지만, 지금은 5분도 걸리지 않고 주변 어르신들에게 줌 화면을 보여주며 자랑하기도 하신다.



    2016년, 충북문화재단의 ‘지특(지역 특성화)’ 지원 사업에 참여하게 되었다. 열정과 패기로 썼던 첫 계획서는 지금 보면 창피하지만 노인음악연구소를 알리는 데 성공했다. 2년 차, 3년 차가 되자 사업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졌다. 많은 단체들이 지특 사업에 노인을 대상으로 한 문화예술교육을 계획하지만 지역 특성화와 노인문화예술교육은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노인만을 위한 사업이 없다는 것에 아쉬움이 생겼다.
    “2025년이 되면 베이비 부머 세대의 노인이 초고령 세대로 진입이 된다고 해요. 이분들은 지금까지의 노인들과 달리 피케 셔츠를 입고, 청바지를 입고 다니세요. 스마트폰 활용도 잘하시고 무엇보다 솔직해요. 이들의 인생 2막을 문화예술로 풀어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노인만을 위한 문화예술교육 정책이나 사업들은 아직 눈에 띄지 않는 것 같아요.”
    인터뷰의 막바지, 최근 나는 스타트업과 관련하여 코칭을 받을 기회가 생겼는데 코치분이 ‘노인힙합문화예술교육’에 대해 언급한 적이 있다.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쉽게 생각할 수가 없어 이번 기회에 살짝 팁을 얻고자 몇 가지 질문을 했다. 활동하며 생기는 고민과 청사진, 그리고 노인문화예술교육의 가장 큰 특징은 뭐라고 생각할까?
    “우선 지역 내에 노인을 대상으로 하는 음악 문화예술교육자가 부재하죠. 소통할 창구가 없다고 해야 할까요? 그리고 청사진이라고 하기에는 잠깐 생각해 본 거지만 악기를 조금씩 다룬 뒤에 오케스트라를 구성해보고 싶어요. 특징이란 누구나 나이가 들수록 새로운 것을 배우는 것에 대해 어려움을 느껴요. 어르신들은 그 정도가 더 심하겠죠. 그래서 계단식, 단계적으로 접근해야 해요. 특히, 노인 인구에도 세대교체가 일어나면서 ‘어르신의 문화예술 조기교육’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우리 지역에서도 시니어 특화 사업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내가 커피 한 잔 살게!” 수업이 끝난 후 기분이 좋으신 어르신들이 종종 말씀하신다. 그럼 이지혜 대표는 일부러 키오스크가 있는 카페로 간다. 버튼을 몇 번 누르다가 이내 “아이고, 이거 어떻게 하는 거여? 좀 해줘 봐!” 하며 그녀를 돌아보면, “엄마! 엄마가 사는 거니까 엄마가 해봐~” 너스레를 떤다. 어르신들도 어느 곳에 가든 관리를 받을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은 악기를 놓은 순간에도 놓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