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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꽃 손

2023-06-14

문화 문화놀이터


삶의 풍경이 머무는 곳
[수필] 꽃 손
'글. 박종희'

    열어놓은 베란다 창으로 고슬고슬한 햇빛이 들이친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화분으로 꽉 차 있던 자리에 햇발이 그림자놀이를 하고 있다. 커피 한잔을 들고 베란다 한쪽에 자리를 잡았다. 우리 집 베란다가 이렇게 넓었던가. 늘 비좁도록 화초를 들여놓아 빨래라도 널려면 까치발을 떼고 널던 기억뿐인데 오늘은 아담한 카페를 차려도 될 것 같은 기분이다. 
    기념일이나 이름 있는 날 들어온 화분과 하나둘 사들인 화분이 오십여 개가 넘었다. 아침저녁으로 화분을 들여다볼 때면 흐뭇했다. 하나, 예쁜 꽃을 보며 호사를 누리는 만큼 관리하는 것이 일이었다. 계절이 바뀔 때면 화분을 싸주고 분갈이하는 일이 어려웠다. 추운 겨울에는 화초가 얼어 죽는 일도 있었다.
    내 몸이 아프고 생활이 나태해지면 화초도 덩달아 게을러졌다. 이파리도 시들고 꽃도 피지 않았다. 하나, 둘 말라비틀어지는 화초를 볼 때마다 화분 정리를 해야겠다고 벼르다가 작정하고 베란다로 나섰다.
    우선, 화분에서 벌쓰고 있는 꽃 손을 모두 뽑았다. 기린초와 베고니아, 수선화 등, 가늘고 여린 꽃나무가 쓰러질까 봐 세워놓은 꽃 손이 제법 많았다. 플라스틱이나 철사로 된 것과 다급할 때 임시로 꽂아 쓴 나무젓가락도 눈에 띄었다. 그렇게 요긴하게 쓰이던 꽃 손은 묶어 따로 두었다.
    큰 화분은 흙을 따로 분리할 요량으로 아파트 공터에 내놓았다. 몇 차례 끙끙거리며 내다 놓은 화분을 지나가던 동네 아줌마들이 한개 두개씩 들고 갔다. 어떤 이는 화분을 가져가도 되겠냐고 하더니 아예 열댓 개를 가져가는 이도 있었다. 
    그 많던 화분이 순식간에 모두 없어졌다.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풍경이 정말 신기했다. 요즘은 버리는 일이 더 큰 일이라 어떻게 처치할 것인가 고민스러웠는데, 뜻밖에도 쉽게 해결된 것이다. 옮기다 깨진 화분을 버리고 들어오며 나한테 소용없어진 물건이 다른 사람들에게는 필요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어릴 때부터 유난히 화초를 좋아했다. 친정 부모님도 꽃을 좋아하셨다. 자랄 때 집 마당에 꽃이 많아 우리 집을 꽃집이라고 했었다. 길을 걷다 작은 풀꽃을 봐도 그냥 지나치질 못했다. 이른 봄, 돌 틈에 피는 제비꽃을 보면 집에 데려오고 싶어 안달했다. 그런 내 성격을 아는 남편이 가끔 종이컵에 제비꽃을 심어 내밀기도 했다. 
    화초를 좋아하다 보니 마치 화분이 집주인 같았다. 한 개, 두 개 늘어나던 화분이 거실을 넘어 안방까지 차지했다. 여름철엔 모기가 생겨 안 좋은 점도 있었지만, 꽃이 필 때면 참 좋았다. 눈을 뜨면 콧속으로 전해오는 향기와 황홀한 자태에 시름을 덜곤 했다. 특히 내가 좋아하는 색색의 바이올렛은 한 번 피면 꽤 오래도록 지지 않았고, 까다롭게 구는 프리지어의 향기는 잠결에서도 매혹적이었다. 
    남편과 등산하다 가져온 야생 난도 일 년 내내 하얀 꽃을 피웠다. 아주 작고 가냘파 보기에도 안쓰러운 난이라 더 애정이 갔다. 거기에 질세라 제라늄과 시클라멘, 베고니아도 다투어 꽃을 피웠다. 어쩌다 한 번씩 물을 줘도 잘 크는 사랑 초와 기린 초, 영산홍, 공기 정화에 큰 몫을 하는 스마트 필름도 오래도록 정이 들었다. 
    다육 식물도 서른 개가 넘었다. 키우기가 쉬워 주부들한테 인기 있는 다육선인장을 한꺼번에 서른 개나 사서 분갈이한 적이 있다. 아주 작아 앙증맞은 선인장을 화분에 옮겨 심는 일이 만만치 않았다. 퇴근하고부터 시작한 분갈이가 새벽 3시가 되어서야 끝났다. 분갈이한 화분을 선반에 올려놓고 나니 허리가 펴지지 않았다. 덕분에 며칠을 호되게 앓았다. 딸애는 그렇게 미련스러운 엄마 때문에 화초가 보기 싫다고 했다. 



    화분을 없애고 나니 새로운 공간이 생겼다. 학교에서 돌아온 딸애가 집 안이 훨씬 너르고 깨끗해 보인다고 좋아했다. 걸핏하면 화초 앞에 앉아 애쓰는 나를 못마땅해하던 남편도 아주 잘했다고 했다. 서운해할 줄 알았던 두 사람이 좋아하니 스산하던 기분이 좀 나아졌다.
    화분을 정리하고 다시 며칠을 앓았다. 말이 오십 개지, 화분 오십 개 옮기기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버릴 때는 몰랐는데 날이 갈수록 팔이며 어깨, 허리가 아파 꼼짝도 하지 못했다. 내 살처럼 아끼던 화초를 버려야 했던 마음마저 같이 아팠다. 
    발품을 팔아가며 사들일 때는 예쁘게 잘 키우겠다는 마음뿐이었는데 결국은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내다 버린 죄책감도 한몫했다. 여기저기 파스를 붙였더니 꽃향기 대신 집안에 온통 파스 냄새가 진동했다. 이번에도 딸애는 매련스럽게 혼자 내다 버려 병이 났다고 툴툴거렸다.
    화분을 버리고 나서 이상한 버릇이 생겼다. 이유 없이 자주 베란다를 나가보는 일이다. 물을 줄 일도, 꽃 손을 세워 줄 일도 없는데 말이다. 아마, 10년이 넘도록 몸에 배어 있던 일이라 그런가 보다. 
    이제 나는 여유로워졌다. 덕분에 화분에서 늘 벌쓰던 꽃 손도 한가해졌다. 요즘은 나도 꽃 손도 할 일 없는 ‘우두커니’가 되어버렸다. 하지만, 아직도 화원을 지나는 길은 자유롭지 않다. 나도 모르게 눈길이 꽃으로 가고 자꾸 발걸음을 멈춘다. 언제쯤이면 이런 마음에서 자유로워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