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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도 물길 따라 숨겨진 보물찾기 순천 여행

2021-11-26

문화 문화놀이터


타박타박 걷는 문화유산 오솔길
남도 물길 따라 숨겨진 보물찾기 순천 여행
'우리나라에서 가을이 가장 아름답게 무르익는 곳'

    보물을 하나쯤 간직하고 산다면? 그보다 가치 있는 인생이 또 있을까. 전라남도 순천에는 다른 곳에서 보기 힘든 보물 세 가지가 있다. 승보사찰 송광사, 백성이 평안을 누리는 낙안읍성, 자연과 인간이 공생하는 순천만 습지가 그것이다. 순천 땅을 굽이굽이 흐르는 물길이 남해와 만나는 순천만으로 세계유산 ' 한국의갯벌'을 찾아 떠난다. 
보물찾기 삼매경에 빠지다, 승보사찰, 사적 송광사
    송광사는 순천의 자랑 조계산 도립공원에 깃들어 있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승보사찰인 까닭에 순천에 가면 꼭 가봐야 할 곳으로 손꼽힌다. 승보사찰이란 승려로서 국가의 스승이 된 국사(國師)를 배출한 사찰을 일컫는다. 송광사는 고려시대에 무려 16명의 국사를 배출했다. 승보사찰 이외에 부처의 진신사리가 있는 불보사찰, 부처의 가르침이 담긴 경전을 보관한 법보사찰이 있다. 이를 세 가지 보물이라는 뜻의 삼보(三寶)사찰이라 부른다. 그렇다고 이곳을 찾는 이유가 이곳이 승보사찰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사계절 빼어난 자연경관과 천년고찰에 깃든 숱한 사연이 여행자를 불러들인다. 아니나 다를까, 송광사 가는 길에 편백 숲길이 이어진다. 소리 없이 내리는 가을비에 산사 가는 숲길은 한층 더 고즈넉하다. 비는 우산을 펼치기엔 거추장스러운 이슬비다. 그 대신 울창한 편백이 우산 노릇을 톡톡히 해준다. 편백과 비가 만나니 편백 내음이 진동한다. 마음도 몸도 자연의 냄새가 그리웠는지 이내 편안해진다.



    길 끝에 성보박물관과 수련관이 잇달아 보인다. 여러 전각을 지나 대웅보전으로 향하는 길목에 발걸음이 멈춘다. 송광사의 명물로 꼽히는 삼청교를 마주한 것이다. 삼청교 아래엔 화려한 연등이 물결처럼 너울거리고 그 위에 삼청교가 무지개처럼 반원을 그리고 있다. 마치 삼청교를 건너면 속계를 벗어나 극락에 닿을 것 같다. 우화각을 지나면서부터 곧장 송광사의 보물찾기에 나선다. 송광사에서 챙겨봐야 할 국가지정문화재는 국사전(국보), 하사당(보물), 약사전(보물), 영산전(보물) 등이다. 그 외에 성보박물관에 국보 4점, 보물 178점 등 다수의 문화재가 있지만, 코로나 대유행에 따라 박물관이 문을 닫음으로써 볼 수 없다. 여러 전각 가운데 가장 유서 깊은 곳은 국사전이다. 고려 공민왕 18년(1369)에 창건하여 송광사 16국사진영(보물)이 보관되어 있다. 정면 4칸의 맞배지붕에 주심포 형식을 따랐는데 이것은 고려시대의 건축양식이다. 하사당은 조선 세조 7년(1461)에 창건한 요사채(寮舍, 승려가 거처하는 집)이다. 단아한 외형과 함께 독특한 환기공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우리나라에서 오래된 요사채 중 하나이다. 
풍요로운 땅에서 만백성이 평안하다, 사적 낙안읍성
    조계산 자락을 벗어나자 언제 그랬냐는 듯 파란 하늘이 고개를 내민다. 다음 행선지는 순천 낙안읍성 민속마을이다. 우리나라 3대 읍성 중 하나인 이곳은 한양을 모델 삼아 만든 조선시대 지방계획도시이다. ‘낙안’은 ‘풍요로운 땅에서 만백성이 평안하다’는 뜻이다. 현재 300여 채의 초가가 원형을 유지한 채 잘 보존되어 있어 사극 촬영지로도 인기가 높다.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 드라마 [불멸의 이순신] 등을 촬영했다. 옹기종기 엎드린 낙안읍성민속마을은 지구상에 하나밖에 없는 초가 마을이다. 초가집에서는 여느 민속 마을에서 느낄 수 없는 온기가 느껴진다.
 
左)국보 순천 송광사 국사전    右)낙안읍성 성곽에서 바라본 마을 풍경

    실제로 마을에 주민 200여 명이 살고 있다. 1.4km의 석성은 원래는 토성이었던 것을 조선 세종 6년(1424)에 석성으로 개축한 뒤, 임경업 장군이 군수로 재직하던 때에 중수했다. 전설에 따르면 장군이 읍성을 하룻밤 만에 쌓았다고 전해 온다. 객사와 동헌, 내아 건물은 모두 북쪽에 있다. 초가가 대부분을 차지하는 읍성에서 기와를 이은 모습이 매우 대조적이다. 고랫등 같은 기와집 주변엔 추색 짙은 고목이 옛이야기를 전해주는 듯하다. 마을 주민들은 매년 11월 초가지붕에 이엉을 새로 얹는다.
    이엉을 엮는 준비 작업이 추수를 끝낸 뒤 볏 짚단을 모으는 것이다. 이후 새끼를 꼬고, 엮으면 본격적인 이엉 이기가 시작된다. 이엉 이는 방법은 둥글게 말아놓은 이엉을 멍석을 펴듯이 펴 나가면서 덮는데 이것을 ‘사슬 이엉 이기’라고 부른다. 이엉을 모두 얹고 용마름을 덮고 나면 이엉이 바람에 날리지 않도록 새끼줄로 단단히 동여맨다. 오랜만에 보기 어려운 진귀한 풍경을 마주하니 여행이 한결 풍성해진 것 같다. 내친 김에 서문 방향 성곽에 올라 마을 전체를 한눈에 내려다본다. 야트막한 산들이 성을 감싸 안고 그 속에 자리한 초가들은 평온해 보인다. 가을이지만 겨울을 준비하는 마을 사람들, 그들을 응원하듯 초가에서 모락모락 연기가 피어오른다. 고샅길이 경계를 만들고 그 너머 동구 밖 어디선가 할머니가 버선발로 반갑게 뛰어올 것 같다. 
갈대와 갯벌, 철새들의 낙원, 명승 순천만
    이번 여행 종착지는 순천만이다. 마지막이지만 사실상 이곳이 하이라이트이다. 조계산 기슭에서 출발한 물줄기가 너른 남해와 조우하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순천만은 우리나라 남해안 중앙에 있는 항아리 모양의 내만이다. 순천만을 구성하는 갯벌, 염습지, 염전 등은 주변의 구렁 같은 산과 농경지와 어우러져 서로를 보듬는다. 그 품에는 수많은 생명체가 태곳적부터 오늘날까지 살고 있다. 순천만에는 저서생물인 꼬막·게·짱뚱어를 비롯해 환경부 지정 멸종위기 야생동물, 갯잔디·나문재·칠면초 같은 바닷가에서 자라는 염생식물 등 다양한 동식물이 서식한다.
    그중 짱뚱어는 우스꽝스러운 생김새와 달리 훌륭한 먹거리로도 손색이 없다. 짱뚱어탕은 국물이 진하고 구수할 뿐 아니라 숙취 해소에 그만이다. 갯벌은 연안 생태계의 보전 기능과 해안을 보호하는 완충 역할을 하고 육상에서 유입되는 오염물질을 정화하는 중요한 자연생태자원이다. 그와 함께 지역주민들에게는 삶의 터전일 뿐만 아니라, 최근엔 갯벌을 활용한 생태관광까지 활용 가치가 높아지고 있다. 순천만 습지가 ‘한국의 갯벌’에 포함되어 세계유산에 등재된 이유 중 하나 아닐까.
 
左)낙안읍성 사대문 가운데 남문인 쌍청루    右)갯골 사이를 유람하는 순천만 생태체험선

    순천만 습지의 백미는 울창한 갈대밭 탐방로와 용산전망대에서 바라보는 풍광이다. 모두 무진교를 지나야 볼 수 있다. 탁 트인 갈대밭을 따라 걷기 편안한 데크길이 놓여 있어 무장애 탐방로를 겸한다. 대대선착장에서 순천만 생태체험선을 이용하면 순천만 연안을 따라 선상 투어를 할 수 있다. 갯골을 따라 순천만 구석구석을 볼 수 있는 독특한 체험 거리이다. 갈대는 한여름 싱그러운 초록 물결을 뽐내다 이젠 황금색 옷으로 갈아입었다. 갈대는 파란 하늘과 상쾌한 바람에 힘입어 좌우로 몸을 흔들며 춤춘다. 그 춤사위에 정신이 팔려 발걸음마저 느긋하다. 무진교에서 용산전망대까지 40분 정도 걸린다. 시간이 문제일까, 걷는 동안 갈대가 벗이 되고, 곧 전망대에 오르면 황금빛으로 물든 S라인 갯골이 기다리고 있을 텐데. 갈대와 바람이 함께 만드는 노랫소리에 발맞춰 유유자적 걷는다.
    바람처럼 몸도 마음도 편안하다. 출렁다리를 지나 20분 정도 솔향 짙은 조붓한 숲길을 지나자 용산전망대에 닿는다. 이미 많은 사람이 들뜬 마음으로 일몰을 기다리고 있다. 전망대 맞은편 첨산과 봉화산 사이로 해가 뉘엿뉘엿 저물기 시작하자 빛의 공연이 펼쳐진다. 둥그런 갈대군락지와 갯벌에 반사되는 황금빛은 한 편의 드라마가 된다. 우리나라에서 가을이 가장 아름답게 무르익는 곳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을 풍경이다. 찬란한 황금빛 일몰이 마지막 빛을 발하며 말을 걸어오는 것 같다. 내일은 또 다른 해가 뜰 거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