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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산벚꽃이 지는 까닭은

2022-08-10

문화 문화놀이터


삶의 풍경이 머무는 곳
[수필] 산벚꽃이 지는 까닭은
'글. 최명임'

    숲이라고 다 아름답고 삶이 펄떡이지는 않는다. 펄떡이는 삶만 고집하겠다면 그것이 숲인가. 우리의 숲에는 고비늙은 나무가 전설이 되고 퇴색한 이파리가 몸을 누이고 거름 자리로 돌아가고 있다. 수많은 꽃잎이 떨어져 적막강산에서 세월을 삼키고 있다. 숲의 미래는 그들에게서 시작되었고 그들을 거름으로 푸르게 살집을 불렸다. 
    종산宗山 언덕배기를 숨차게 오르면 첫머리에 아버님 산소가 있다. 한참 위로 줄줄이 자리한 선친들의 산소를 올려다보고 있으면 문중의 내력이 산줄기에 속속들이 기록된 것 같다. 얼마나 많은 이야기를 담고 숲으로 돌아갔을까. 휴식에 든 그림자 위로 사월의 바람이 감미롭다.
    사월의 숲에 띄엄띄엄 산벚꽃이 피었다. 하도 외져서 봄이 와야 그들의 존재를 알아채는데 지고 나면 또 잊어버린다. 봄을 붙들고 부득부득 삶의 이야기가 푸지다. 자리를 탓할 만도 한데 꿋꿋이 저의 이름을 밝힌다. 
    산벚꽃은 꽃말처럼 삶이 담백하다. 화려하지도 유별나지도 않은 미소로 은은히 산야를 물들이는 연분홍 꽃이다. 세상에 속해 있지만, 어쩐지 세상과 담을 쌓은 것 같아서 외로워 보인다. 그렇다고 제 삶에 소홀하지 않았다. 한 열흘 방긋 피었다가 질 것을, 겨우내 마음을 다잡고 초봄부터 온몸으로 물을 길어 올렸다. 
산 아래를 동경했으리라. 무심 천변 화려한 벚꽃 무리처럼 사람의 눈길을 붙잡고 빛나고 싶었으리라. 종내에는 순응하자고 숲에 뿌리를 내렸으니, 숱한 나무가 그렇게 뿌리를 내리고 숲의 내력이 시작되었다.  
    사월의 숲에서 낙화의 계절을 만난다. 
    산벚꽃은 질 때도 소리 없이 진다. 세월을 탄 꽃잎이 방울방울 떨어진다. 꽃잎 속에 외로움이 꽃술처럼 박여있다. 떨어지는 파편을 받아들면 통증이 가슴을 파고든다. 바람이 후루룩 불어오더니 꽃잎을 분홍머리동이처럼 날려 보낸다. 





    우린 항상 꽃이 진다고 말하지만, 내밀하게 세대 바꿈을 하는 의식이 아닌가. 숲에는 그렇게 진 꽃 무덤이 군데군데 흩어져 있다. 지는 꽃잎을 보고 희미해지는 존재의 볼품없음에 추하다고 말할 것이 아니다. 우리는 그들로 인해 다시 오는 봄은 더 아름다울 거라 기대하고 숲은 미래를 논하며 기다림이 이어진다. 
    해묵은 시간이 어머니를 놓으려나 보다. 엄니도 지쳐서 그만 쉬고 싶은지 모르겠다. 호미도 신발도 벗어놓고 작심하고 누우신 것 같다. 닳아버린 작은 몸이 꽃잎처럼 시든다. 
    엄니 고관절 뼈가 조각조각 부서져 내렸다. 통증이 몸을 조여 온다고 된 신음을 내신다. 응급실 청년 의사는 엄니가 고령이라 수술이 불가하고 합병증으로 두어 달 안에 돌아가실 거라고 단언했다. 월요일에 만난 담당의는 수술하면 걸을 수 있다고 장담했다. 엄니가 수술 후로 거동을 못 하신다. 의사는 노인이 병중에 계시면 치매가 심해진다며 검사 결과지를 내민다.
    엄니는 이승도 저승도 아닌 어디쯤에서 눈물바람을 하실까. 흙빛으로 변해 잠든 얼굴에 저승꽃이 만개했다. 소리 없이 피었다가 지는 산벛꽃 같이 엄니가 지고 있다.  
    엄니는 세상이란 거대한 숲 언저리, 달만 오롯이 뜨는 곳에 핀 산벚꽃이었다. 자랑할 것도 유려함도 없이 담백하게 피었어도 삶의 이야기는 옹골찼다. 한 줌 흙으로 돌아가면 그로써 봄은 또 새록새록 피어날 테니 한세대가 막을 내리는 모습이 숙연하다. 
    퇴근 후에 병원에 들렀다. 엄니가 종일 침대를 거부하고 휠체어에 앉아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었단다. 본래 신명이 그리 좋으냐고 여기저기서 물었다. 사느라 급급했던 엄니는 꽃바람에 겨워 춤추고 싶은 마음도 부를 노래도 도시 없는 줄 알았다. 
    요양보호사가 동영상을 보여주었다. 
    “꽃을 꺾어서 머리에 꽂고~ 잎을 따서 입에 물고~ 저 산 올라가 들 구경하니 길 가던 행인이 길 못 간다~~”  
    소싯적에 불렀던 노래인가 보다. 엄니는 빛나고 싶었던 산벚꽃이었을까. 하여 산 아래 행인의 눈길 한번 잡고 싶었을까. 이제야 들어보는 노모의 노래가 낯설고도 애잔하다. 엄니 가슴에는 못다 부른 노래가 산처럼 쌓였을 것 같다. 





    엄니가 홀로 이별 파티를 한다. ‘돌아와요 부산항에’를 열창하고 ‘찔레꽃’은 구슬프게 부른다. 열다섯 꽃처녀로 돌아간 것 같다. 알량한 폐습에 묶여 감춰두었던 신명인가, 풀지 못한 화심花心을 쏟고 있다. 꽃 같은 젊은 날이 손끝에서 흩날린다. 일어설 수만 있다면 병원 담벼락을 넘어 세상으로 날아가 버릴 것 같다. 기기에 담지 않았지만, 욕설도 시원하게 투척하셨단다. 참고 살았던 시간이 용트림하는 순간은 아니었을까.    나는 엄니 걸쭉한 육두문자의 향방을 알 것도 같다. 내 무정함에 대한 질타요, 남정네의 통념에 벼락같은 한 방이려니. 애상에 잠길 법도 한데 엄니가 웃고 있다. 노인병원으로 가시기 전날 일이다. 
    엄니가 온몸과 마음을 살라 온 한 세상과 이별하고 살아 또 한세상으로 건너간다. 
    응급차에 엄니를 누이고 옆에 앉았다. 뒤이어 남편이 차를 몰고 따르고, 그 뒤를 아들의 차가 따랐다. 고려장을 하는 행렬 속에서 회한과 비애를 못 이겨 눈물을 쏟았다. 전생에 무슨 곡절이 있었는지 내 지게에 엄니를 산 채로 지고 산속 오지로 떠난다. 언젠가 나도 업혀 갈 그 지게에.   
    도심에도 오지가 있었다. 아닌 듯 그런 듯 버려진 우리의 엄니들이 사방에 웅크리고 있었다. 떨어진 산벚꽃같이 물기가 잦아들고 임박한 임종이 곁을 지키고 있었다. 
    비접촉 면회가 가능한 날, 엄니를 만났다. 우리가 건너갈 수도, 엄니가 건너올 수도 없는 세상 경계에 유리 벽이 버티고 있었다. 꽃손자 꽃손녀 가슴에다 심어놓고 어여쁘다 하시더니 함박꽃같이 웃는다.  
    나는 엄니를 볼 때마다 산벚꽃이 지는 까닭을 생각한다. 
    문중 종산에 꽃무덤이 하나둘 늘어간다. 해마다 그 숲에 산벚꽃이 피면 봄이구나, 했는데 이제는 엄니가 먼저 보일 것 같다. 내 마음의 숲에는 늘 피어있을 테니, 지더라도 꼭 잊지 않겠다고 말해주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