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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청양고추

2023-06-14

문화 문화놀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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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청양고추
'글.박종희'

    혀끝이 알싸했다. 물 한 컵을 다 들이켜도 소용없고 눈물 콧물을 닦아 놓은 화장지가 눈에 띌 만큼 쌓였다. 밥 먹으며 눈물 닦는 내 모습이 우스꽝스러운지 옆 테이블에 앉은 남자가 자꾸 힐끔거렸다. 가족하고 왔기에 망정이지 어려운 사람하고는 아예 못 먹을 것 같다.
    주말이면 낙지볶음을 먹으러 간다. 낙지볶음에 칼국수 면을 비벼 먹는데 그 맛이 아주 일품이다. 낙지를 좋아하는 남편과 딸애가 그 집을 알아냈을 때 보물이라도 찾아낸 듯 얼굴에 홍조가 일었다. 
    딸애의 낙지 예찬에 못 이기는 척하고 따라갔던 날 어이없게도 나는 울고 왔다. 매운 것을 못 먹는 내 입에 들어온 낙지는 음식이 아니고 내 혀를 괴롭히는 무기였다. 어찌나 맵던지 눈물 콧물 다 쏟아내고 결국 맨밥만 먹었다. 마치 비염이라도 걸린 것처럼 재채기해대는 나를 두 사람은 멍하니 바라보았다. 워낙 매운 것을 못 먹는 것을 알지만 그 정도로 맵지 않다는 표정이었다. 
    우리 집 밥상에는 매운 것이 없는데 이상하게도 남편과 딸애는 얼큰하고 칼칼한 음식을 좋아했다. 딸애는 라면을 끓여도 청양고추를 썰어 넣고 비가 오거나 기분이 안 좋을 때면 매콤한 음식을 찾았다. 
    외식하자고 하면 두 사람은 당연히 그 집을 우선으로 꼽았다. 나중에 알았지만, 그 집은 꽤 알려진 맛집이었다. 갈 때마다 번호표를 받아들고 줄 서 있는 사람이 많을 만큼 유명한 집이었지만, 나는 별로 내키지 않았다. 
    몇 번쯤 더 갔을까. 도무지 곁을 내줄 것 같지 않던 내 혀가 드디어 낙지볶음을 받아들였다. 너무 매워 혀가 알알하고 땀을 줄줄 흘리면서도 먹고 나면 개운하고 깔끔한 뒷맛 때문이지 싶었다. 
    도대체 어떻게 만든 양념이기에 이런 맛이 날까. 몇 군데를 다니며 먹어봤지만, 그 집 낙지볶음은 뭔가 다른 맛이 느껴졌다. 웬만한 음식은 서너 번 먹으면 물리는데 그 집은 언제나 처음 먹는 것처럼 새롭고 질리지 않으니 말이다. 
    사람의 감각기관 중 혀가 가장 알랑거린다고 하더니 어느새 내 혀도 낙지볶음에 길들었다. 먹을 때는 매워서 호호거리지만, 칼국수와 비벼 먹는 그 맛은 안 먹어본 사람은 모를 것이다. 
    매운맛도 다 같은 것은 아니다. 청양 고춧가루로 만든 음식을 먹고 나면 속이 아파 고생하는데 청양고추를 썰어 넣은 음식은 먹을 때만 화끈하게 맵고 시간이 지나면 오히려 입안이 개운하다. 그래서인지 청양고추로 맛을 낸 낙지볶음도 혀에 불이 나도록 맵다가도 끝 맛은 달았다. 같은 매운맛을 내는데 재료에 따라 이렇게 맛이 달라지다니. 낙지볶음 때문에 청양고추에 대한 새로운 발견을 한 셈이다.
    청양고추는 무조건 매운 줄만 알았는데 좋은 점이 더 많다. 청양고추에는 귤보다도 비타민C가 많아 피로감을 줄여주고 입맛도 돋우어준다. 청양고추에 들어 있는 캡사이신 성분은 암세포가 자라는 것을 막아주어 암 예방도 한다니 얼마나 귀한 열매인가. 





    매워서 성질이 고약할 것 같지만, 겸손한 것이 청양고추의 매력이다. 청양고추는 자신의 얼굴을 드러내기보다는 다른 재료의 낯을 내준다. 매운맛을 낼 뿐 아니라 칼칼한 맛으로 국물의 잡내를 잡아준다. 바로 청양고추의 강하고 매운 성분이 약한 맛을 도와주기 때문이리라. 
    지인 중에 청양고추 같은 사람이 있다. 그녀는 한 번 화나면 물불 가리지 않고 할 말을 다 쏟아내는 사람이다. 그악스럽게 말할 때는 입에서 매운 냄새가 날 것 같지만, 경위 없는 말을 하는 것은 아니다. 처음에는 펄펄 뛰듯이 높은 목소리를 내던 사람도 그녀와 이야기하면 수그러든다.
    감정에 치우치지 않고 사람을 구슬리는 재주를 가진 그녀는 힘없는 사람을 잘 챙겼다. 동료들도 어려운 일이 생기면 그녀를 먼저 찾았다. 상사들 앞에서도 기죽지 않는 그녀가 무슨 일이든 풀어줄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리라.





    겉모습으로 사람을 판단하면 안 된다더니 늘 당당하고 씩씩하던 그녀도 유순하고 여린 여자였다. 암 투병으로 고생하던 그녀의 남편이 세상을 떠났다. 장례식장에서 마주한 그녀의 눈동자는 정신을 놓은 듯 한 곳에만 머물렀다. 그렇지 않아도 살집이 없는 그녀가 검은 상복 때문에 더 여위어 보여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남편 이야기를 하던 그녀가 울음을 터트렸다. 자기도 처음부터 악악거리며 할 말 다 하는 여자는 아니었는데 사람들이 그렇게 만들었다고 푸념을 늘어놓았다. 젊었을 때는 나긋나긋하고 천생 여자였는데 아픈 남편 뒷바라지하며 살다 보니 억세고 단단해지더란다. 그 말을 들으며 내가 그녀를 오해했다는 생각이 들어 미안했다. 늘 야멸치고 대찬 그녀의 이미지 때문에 데면데면하게 굴었던 것이 부끄러웠다. 
    갈수록 이기적이고 개인주의로 변하는 요즘, 세상은 그녀같이 똑 부러지는 사람을 원하는지도 모른다. 청양고추같이 확실하게 맵지만, 뒤끝 없는 사람 말이다. 나이 드니 나도 청양고추 같은 사람이 좋다. 이래도 저래도 좋은 것이 아닌 그녀처럼 확실하게 제 목소리를 내는 사람 말이다.
    무엇이든 맞닥뜨리지 않고 겁부터 먹는 바람에 내 삶은 도전이 없었다. 지레짐작해서 청양고추에 손을 대지 못했던 것처럼 그녀와도 가까워지지 못하고 언저리에서만 서성거렸다. 
    생각해보면 세상에 공짜는 없지 싶다. 뭐든 값을 치러야 얻을 수 있듯이 입맛도 그렇다. 어른이 되면 매운 것을 먹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그녀처럼 인생의 단맛 쓴맛을 봐야 비로소 매운맛을 받아들일 수 있는 것 같다.
    요즘 우리 집은 삼삼하게 끓이던 된장찌개에 청양고추를 넣고 간장에 삭힌 청양고추가 식탁에 오르기도 한다. 그녀가 남편 뒷바라지하며 강해졌듯이 내 혀도 혼란스러운 세상맛에 길들어지고 있다는 증거일 것이다. 그렇다고 내가 청양고추의 깊은 맛을 다 알았다는 것은 아니다. 내가 청양고추에 조금이라도 곁을 내주는 이유는 호락호락하지 않았던 내 삶 속에서 소태같이 쓴맛을 겪으며 내 혀도 조금씩 단단해졌기 때문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