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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쿠바 친구를 소개합니다

2017-10-19

라이프가이드 여행


내 쿠바 친구를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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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은 떠남과 돌아옴의 반복이다. 대게는 더 많은 곳을 여행하길 바라고 더 많은 것을 보기를 원한다. 더 많이 즐기고 더 많이 담아오고 싶어 늘 새로운 곳을 찾곤 한다. 시간과 비용이 한정적인 이들에게 어쩌면 당연한 욕구이자 보편적인 사고이다. 그럼에도 나는 늘 새로움과 익숙함 사이, 일상과 여행의 경계를 방황한다. 무엇일까, 나를 그 사이에서 머무르게 만드는 것은. 사람이다. 내 여행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언제나 사람이었고 쿠바는 그런 내 여행의 취향을 가장 잘 저격한 곳이다. 쿠바는 언제나 같은 곳으로 향하게 하는 묘한 매력을 가진 나라다. 그러게, 쿠바는 여행 후 후유증이 유난히 심한 곳이다. 쿠바 앓이, 그렇게 한동안 지나 다시 짐을 꾸리고 그렇게 일상과 여행의 경계에 서고 결국 쿠바는 많은 여행자들에게 깊은 그리움으로 남는다.
    쿠바에는 내가 여행 때마다 만나는 쿠바 친구가 서넛 있다. 그들 중엔 음악인도 있고 요리사도 있고 까사(Casa, 쿠바의 민박집을 부르는 스페인어) 주인도 있다. 동네에서 마주치면 이웃집 친구 인사하듯  반갑게 인사하는 내 쿠바 친구들. 불쑥 나타나면 동그랗게 놀란 눈으로 양손을 벌려 안아주며 양 볼에 가벼운 입맞춤으로 맞아주는 이들. 그들은 거리의 악사 알베르토, 꿈 많은 소년 디에고, 화가 이르빙, 수다쟁이 마리나그리고 요리사 겸 까사 주인 에밀리오다.
 




해바라기 꽃을 닮은 <노래하는 알베르토>

    그를 처음 만난 것은 10년 전으로 시간을 거스른다. 올드 아바나 대성당 광장의 그늘에 앉아 하릴없이 여행자들을 구경하던 내 귀에 투박하지만 반가운 음악 소리가 들렸다. 대여섯 명으로 구성된 밴드였다. 흰 머리카락, 듬성듬성 검버섯도 핀 얼굴 그리고 빛바랜 모자를 쓰고 있었다. 낡은 악기를 두드리며 목청껏 노래를 부르던 아저씨가 바로 알베르토다. 예순도 넘어 보였지만 밴드 멤버 중 그가 가장 젊었다. 봉고를 두드리다 카우벨을 치고 노래가 시작되면 끌라베스로 박자를 맞춘다. 나는 그에게 하루 2시간씩 봉고를 배웠다. 미로처럼 만들어진 좁은 길을 따라 들어가면 다닥다닥 붙은 아파트가 나오고 그 안에 작은 거실, 작은 주방과 작은 방이 있었다. 수업을 위해 그는 광장 근처 친구네 집을 빌렸다. 쿠바에 갈 때마다 나는 그를 만나러 간다. 헤밍웨이가 자주 찾아 유명해진 암보스 문도스 호텔 옆자리는 언제나 그들의 자리다. 언제나 반갑게 안부를 묻고 음악을 선물해주며 웃음으로 맞아주는 내 친구들, 내게 세월이 흐른다는 것은 그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또 다른 의미기도 하다.


쿠바 젊은이들의 초상 <철없는 음악가 디에고>

    이 당돌한 아이를 처음 만난 곳은 올드 아바나 골목의 살사 전용바(Salsa Bar)였다. 살사가 취미인 나는 매번 쿠바를 갈 때마다 그곳에 들렀고 그날 그는 내게 여러 번 춤을 권했다. 별다른 의미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대부분 연인들이 오는 곳에 나나 그 아이처럼 혼자 가게 되면 추던 사람과 출 수밖에 없다. 신나게 살사를 추고 숙소로 돌아가려던 내게 그 아이는 집요하게 자기의 노래를 들어줄 수 없냐고 졸라댔다. 낡아 빠진 쿠바노(Cubano, 쿠바 남자를 부르는 스페인)의 대표적인 작업 수법이었다. 하도 끈질기게 졸라대는 통에 ‘그래 얼마나 잘 부르나 한 번 들어나 보자’하고 그 골목에 자리를 잡았다. 허겁지겁 기타를 꺼내 연주를 시작하는데 어머나 이 녀석, 그렇게 졸라대던 이유가 있었다. 어찌나 감미롭게 노래를 잘 부르던지 하마터면 그의 꼬임에 넘어갈 뻔했다.
갓 스물을 넘긴 어린 청년의 당돌함과 그가 가진 음악적 재능은 쿠바의 많은 젊은이들의 모습이다. 그들은 고작해야 레스토랑에서 연주를 하거나 유명해지면 라이브 바에서 밴드로 활동한다. 그는 그의 재능을 이용해 쿠바 밖으로 나갈 수 있는 합법적인 방법을 찾고 있는 많은 쿠바 젊은이 중 하나다. 어리고 앙큼한 이 녀석을 가끔 쿠바의 올드 아바나 거리에서 만난다. 밴드를 만들어 세계적인 유명 라틴 가수가 되고 싶다는 그의 꿈을 응원한다. 그런 디에고는 이시대 쿠바 젊은이들의 초상이다.



나이 많은 소녀 <수다쟁이 마리나>

    이해하긴 쉽지 않은 발음이지만 그녀는 영어를 제법 잘했다. 그녀의 직장은 올드 아바나의 꽤 괜찮은 까사다. 4층 꼭대기 루프탑 바가 그녀의 공간이다. 아침이면 작은 테이블에 정성껏 음식을 차리며 노래를 흥얼거린다. 큰 가슴 때문에 블라우스는 늘 단추가 터질 듯 위태롭고 부스스하지만 은근 섹시한 머리카락, 콧소리가 잔뜩 들어간 목소리와 술에 취한 듯 반쯤 풀린 눈. 그녀는 섹시미와 귀여움을 겸비한 50대 아줌마다. 전 남편과 이혼하고 아이들과 떨어져 지금은 그녀만의 생활을 하고 있다. 늦은 밤, 아바나의 별을 보며 함께 크리스탈 맥주(쿠바의 대표 맥주)를 마시던 밤 우리는 친구가 되었다. 이제 그녀의 직장은 내가 쿠바에 갈 때마다 머무는 곳이 되었고 그녀와 나는 가끔 짓궂고 야한 농담도 거뜬히 주고받을 정도로 가까운 친구가 되어 가는 중이다. 서로의 싱글 라이프를 찬양하면서 말이다. 쿠바는 이혼과 재혼이 흔한 곳이다. 마리나는 어쩌면 그 나이 쿠바 여인들의 일반적인 모습이 아닐까.




부드러운 외모에 <강열함을 붓으로 표현하는 화가 이르빙 또레스>
    여행자들에게 낯설지만 괜찮은 도시가 있다. 쿠바의 국민 가수 베니 모레(Benny More)의 고향이자 예술의 도시 씨엔푸에고스다. 여행자들에겐 그저 아바나에서 뜨리니다드로 가는 길에 잠시 들리는 곳이지만 나는 이 도시가 무척 인상적이었다. 프랑스식 건물과 푸른 바다가 있는 풍경이 쿠바의 다른 도시와 달라서도 이유겠지만 또 하나는 내 화가 친구 이르빙 또레스가 있어서다. 화가 이르빙 또레스, 온화하고 부드러운 그의 외모와 달리 그의 그림은 강렬하다. 작은 작업실은 시엔푸에고스의 심장 호세 마르티 공원의 한편에 있었다. 노랑, 빨강, 검정 그리고 녹색으로 채워진 그림에는 낯익고 낯선 이들의 얼굴이 다양한 시선과 방법으로 담겨 있었다. 유화에 사진과 종이 등의 재료를 써 독특하게 표현한 그의 그림은 첫눈에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  낯선 동양인 친구의 갑작스러운 방문에도 잊지 않고 기쁘게 맞아 주는 그는 지금 스위스에서  쿠바를 소개하고 있다. 한국에서 전시를 하고 싶다는 그의 꿈이 이루어 질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해 본다. 


내게 랍스터를 맡겨죠 <까사의 요리사 에밀리오>

    에밀리오만큼 한국 방송에 많이 소개된 쿠바인도 없지 싶다. 뜨리리다드 마세오 광장 근처 그의 까사를 처음 찾았던 것은 10년 전이다. 지인의 여행 사진을 전달해 달라는 부탁을 받고 사진을 들고 그 집을 찾았다. 그날 이후 나는 쿠바를 갈 때마다 그곳에 묵는다. 이젠 가족처럼 편안해진 그들은 내가 어느 날 불쑥 나타나도 별로 놀라지 않는다. 뜨리니다드는 여행자들에게 인기 있는 쿠바의 대표 여행지 중 하나이고 한국의 TV 프로에서 그곳을 소개할 때마다 그가 빠지지 않는 이유는 음식 솜씨와 깔끔한 까사 때문이다. 음식 잘 만드는 에밀리오와 까사를 언제나 반질반질 손질하는 파티마는 한국인 여행자들에게 단연 인기다. 맛있는 랍스터를 만들고 언제나 뽀송뽀송한 시트로 손님을 맞는 집이다. 뒤뜰 작은 정원엔 계절마다 과일이 익는다. 가을 무렵 큰 애플망고가 주렁주렁 달렸고 여름에는 바나나와 구와바가 열린다. 잘 익은 망고를 골라 내 손에 들려주는 파티마는 나이는 나보다 어리지만 엄마처럼 다정하다. 그들은 나의 자랑스러운 친구다, 지구 반대편에 나를 반갑게 맞아 줄 친구가 있고 그들을 만나러 여행을 떠난다는 것은 내게 굉장히 매력적인 일이다. 새로운 곳을 굳이 찾지 않아도 내 여행이 언제나 행복한 이유는 바로 그들이 있어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