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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봄이면 새 잎 피우는 나무들처럼

2021-03-30

라이프가이드 여행


충북의 숲과 나무?증평
새 봄이면 새 잎 피우는 나무들처럼
'증평읍 용강리,송산리의 오래된 나무와 숲 봄 마중'

    충북 증평군 증평읍과 용강리, 송산리에 있는 오래된 나무와 숲으로 봄 마중을 나갔다. 때가 일러 새 잎은 보지 못했지만, 수백 번의 봄을 맞이한 고목들은 푸른 봄 대신 옛 이야기로 먼저 화답했다. 보강천 미루나무 숲을 나온 자전거 한 대가 냇물에 놓인 낮은 다리를 건넌다. 푸른 자전거가 가는 길을 따라 신록의 봄이 곧 오겠다.


강리 마을 사람들이 지켜낸 은행나무


    400년을 훌쩍 넘긴 증평읍 용강리 은행나무의 자태가 예사롭지 않다. 언뜻 보기에 한 그루처럼 보이는데, 공식적으로는 두 그루라고 알려졌다. 땅 위로 드러난 두 개의 줄기로 봐서 두 그루가 맞는 것 같은데, 멀리서 바라보면 두 나무 줄기의 갈라진 면이 하나의 나무가 두 개로 쪼개진 것 같은 모습이다. 두 나무의 줄기를 맞대면 딱 들어맞아 온전한 나무 한 그루의 모습을 이룰 것 같다.
    그런 생각에 힘을 실어 주는 이야기가 마을에 내려온다. 아주 오래 전에 나무가 벼락을 맞아 줄기가 두 쪽으로 갈라졌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무는 지금껏 살아 400년 넘게 마을을 지키고 있다. 2~3년 전까지 마을 사람들은 이 나무에 금줄을 치고 매년 일정한 날 마을 사람들의 안녕을 위해 제를 올렸다.
    마을을 지키는 이 나무가 한때 잘릴 뻔했다. 1930년에 일어난 일이었다. 두 그루의 은행나무를 베어 새로 짓는 향교의 기둥으로 쓸려고 했는데, 마을 사람들이 하나가 되어 나무를 지켜냈다고 한다.
    용강리에는 400년 넘게 살고 있는 느티나무도 한 그루 있다. 은행나무 두 그루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느티나무를 찾아갔다. 마을 안내판 옆 ‘보호수’라고 적힌 이정표를 따라 간다. 커다란 바위 뒤로 느티나무가 보인다. 굵은 줄기에서 가지가 둥그렇게 퍼졌다. 보기만 해도 마음이 편안해진다. 봄 햇살 따듯한 날이면 마을 어르신들이 나무 그늘을 찾는단다. 낮은 언덕 위에 서있는 나무가 마을을 굽어보는 것 같다.
    고목에 새잎이 나고 신록으로 물드는 봄이면 마을을 굽어 살피는 푸른 나무 한 그루에 마을도 푸르러질 것 같다.


 


 송산리 시무나무와 미륵딩이 느티나무


    증평읍 송산1리 부근 옛 고개 이름이 솔티(솔고개)다. 소나무가 많아 마을 이름과 지명에 소나무를 나타내는 ‘솔’ ‘송(松)’ 등이 쓰였다. 지금은 소나무가 그렇게 많지 않다.
    송산3리의 옛 이름은 송오리다. 마을 어귀에 250년 넘은 시무나무가 네 그루 있다. 마을 어귀 동구나무 중에는 느티나무가 많은데, 옛날에는 시무나무도 종종 볼 수 있었다고 한다. 송오리에서 동구나무 역할을 하는 시무나무를 처음 봤다. 시무나무 네 그루가 마을을 드나드는 무슨 관문 같기도 하고, 액운이 들지 못하게 마을을 지키는 장승같기도 하다. 예로부터 마을 사람들은 시무나무 네 그루를 마을을 지키는 ‘수호목’으로 여겨왔다고 한다. 
    송오리 버스정류장 앞, 마을 어귀 시무나무 네 그루를 지나 마을로 들어간다. 햇살 바른 마을 한쪽에 도랑물이 흐른다. 도랑을 정비하고 지붕을 씌운 곳에 빨래터라는 이름표가 붙었다. 옛날에 마을 사람들이 빨래를 하던 도랑이다. 원래 빨래터는 지금 빨래터 자리 위에 있었다.
    갔던 길을 되짚어 나와 보강천 쪽으로 걷는다. 보강천 못미처에 있는 미륵사에 도착했다. 미륵사를 찾은 것은 절 옆에 있는 증평 미암리 석조관음보살입상과 300년 넘은 느티나무 한 그루 때문이었다. 옛 마을 사람들은 이 불상을 미륵불이라고 하고, 미륵불 주변 논밭을 미륵딩이라 불렀다.
    넓게 퍼진 느티나무 고목 가지가 미륵불을 품고 있는 모습이다. 나무도 미륵불도 평온해 보인다. 그 모습을 뒤로하고 미륵딩이 마을로 접어들었다. 무너져 주저앉은 옛집이 화석처럼 남은 풍경이 300년 넘게 살고 있는 느티나무 고목 뒤에서 애잔하다.    


 


보강천 미루나무 숲


    바람은 보강천에서 거세졌다. 장미대교에서 증평대교 쪽으로, 보강천 북쪽 둔치 길을 걸었다.
    물결을 만든 바람이 물비린내를 머금고 공중에서 나부낀다. 물결마다 햇빛이 부서진다. 냇가 억새밭도 물결처럼 일렁거린다. 증평대교 서쪽 인도에서 바라보는 풍경에 ‘보강천 미루나무 숲’도 있었다.
    예전에 보던 미루나무가 아니었다. 70년대 시골길, 흙먼지 날리는 신작로 가로수가 미루나무였다. 한여름 오후 두시 땡볕 아래 송곳처럼 박힌 미루나무 그림자가 잊히지 않는 것은 미루나무 모습 또한 그랬기 때문이었다.
    ‘보강천 미루나무 숲’의 나무는 옛 신작로의 그 미루나무가 아니라 ‘이태리 포플러’란다. 언제부턴가 사람들이 미루나무라고 불렀고 ‘미루나무 숲’이 됐다고 한다. 그런데 ‘이태리 포플러’가 미루나무와 양버들을 접목해서 만든 수종이라고 하니, 아주 딴 나무는 아닌 셈이다. 다만 추억 속 그 미루나무였다면 더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며 ‘보강천 미루나무 숲’으로 들어갔다.



    길은 여러 갈래다. 나무와 나무 사이로 난 좁은 길을 걷는다. 울창한 숲은 아니지만 줄지어 선 거대한 나무는 성벽 같다. 아무 생각 없이 올려다본 하늘에 낮달이 떴다. 미루나무 꼭대기에 낮달이 걸렸다.
    집으로 돌아갈 시간이다. 미루나무 숲을 벗어나 생활의 편린 속으로 들어가는 길, 다시 걷는 증평대교에서 미루나무 숲과 보강천을 돌아본다. 시냇물을 건너는 낮은 다리 위로 자전거가 한 대 지나간다. 아직 새 잎 피우지 못한 미루나무 숲에서 나온 자전거, 푸른 자전거가 가는 길을 따라 곧 신록의 봄이 피어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