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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진년 새해, 만복이 백성에게 만세유전하기를 비옵니다
'레이크파크 르네상스 충북 - 증평Ⅱ'

보강천 일출을 보았다. 남하리, 광덕리, 송산리에 있는 미륵불을 보고 남차리 수살제의 전설을 들었다. 그날 보고들은 모든 것이 존재하는 이유는 단 하나, ‘만복은 백성에게’다. 걱정 근심 모두 덜고 2024년, 새해에는 모든 사람들에게 좋은 일만 생겼으면 좋겠다. 증평의 산천을 흐르는 모든 물줄기를 따라 잡귀잡신은 물 아래로 사라지고 만복만 남아 세상 사람들 모두 평안한 한 해 되기를…

보강천 일출 사진



삼기천과 보강천이 만나는 곳에서 떠오르는 해를 보다
보강천 새벽 감은 하늘을 가르며 떠가는 그믐달의 속도로 시간은 흐른다. 시퍼렇게 얼어붙은 사위를 따듯하게 지피는 것도 그믐달빛이었다. 달빛에 눈을 모으면 마음은 어느새 기원으로 흐른다.
어둠이 조금씩 걷힌다. 미명 속에서 사물의 윤곽이 서서히 살아난다. 시커멓던 냇물이 밝아지고 물가의 억새꽃도 제 모습을 드러낸다. 세상의 것들이 그렇게 하나 둘씩 빛으로 드러날 때 하늘을 저어가는 그믐달만 밝음 속으로 서서히 사라진다.
먼 산 산등성이가 밝아지면서 새들이 보강천 위로 날기 시작한다. 시시각각 하늘색은 변하고 하루 중에 가장 찬바람이 일더니 드디어 떠오르는 해. 해가 뜬다. 둥근 빛이 퍼지며 산등성이에 얹혔던 어둠을 밀어낸다. 해가 산마루 위로 제 모습을 완전히 드러냈다. 시원에서 흘러온 빛이 보강천에 이르렀다. 그 모든 순간이 기원의 시간이었다. 해와 달이 동쪽 하늘에 함께 떠있었던 겨울 어느 날 새벽이었다.
보강천 둔치 억새밭 길로 사람들이 하나 둘 오가기 시작한다. 아침 햇볕을 받은 억새꽃이 낱낱이 모습을 드러낸다. 수면을 스치듯 날아오르는 새를 바라본다. 저 앞에서 굽이쳐 흐르는 보강천 물길로 흘러드는 또 다른 물줄기는 삼기천이다. 삼기천과 보강천이 만나는 곳에 놓인 다리는 사곡교였다.
사곡교 아래를 흐르는 삼기천 물줄기를 거슬러 오르면 은모래 반짝이는 물가가 나온다.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 뜰에는 반짝이는 금모래빛’을 노래한 김소월 시인의 마음으로 물을 거슬러 오르면 사람들의 평안한 삶과 안녕을 빌던 수살제와 장뜰두레의 마을이 나온다.
장뜰두레, 수살제, 마을 사람들의 안녕을 기원하다
하나의 물줄기도 마을 마다 부르는 이름이 달랐다. 삼기천도 그렇다. 지금의 삼기저수지까지를 삼기천, 죽리초등학교까지를 장천(장래천), 보강천과 만나는 사곡교까지를 증자천(증천내)으로 부른다. 그 흔적은 증천리, 장내교 등 마을 이름과 지명, 다리 이름 등에 남아있다.
삼기저수지 아래 남차리에는 ‘장래천 수살(동네 어귀에 서있는 돌이나 나무. 마을로 들어오는 액을 막고 복을 지킨다는 뜻이 담겼다.)’의 이야기가 전해진다. 300여 년 전 장래천에 홍수가 나서 피해가 이만저만 아니었다. 마을 사람들은 홍수를 막아 마을 피해를 입지 않게 하고 전염병도 범접하지 못하게 해달라는 간절한 마음으로 수살고사(수살제)를 지내기로 했다. 수살고사는 정월 14일에 지냈다. 수살에 참석하는 사람들은 3일 전부터 술과 담배를 입에 대지 않고 수살막에서 찬물로 목욕을 하는 등 정성을 다했다. 그 전통이 이어져 수살고사는 지금도 지내고 있다. 정월 14일에 고사를 올리고 참석한 사람들이 음복하며 1년 동안 마을에 삿된 기운을 막고 좋은 일만 생기라고 기원한다.

증평 남하리 석조보살입상



남차리 마을 사람들의 수살고사 이야기를 품고 흐르는 물줄기를 따라 조금 더 내려가면 남하리 마을에 전해지는 장뜰두레놀이를 만날 수 있다. 마을 사람들의 풍요와 평안을 기원하는 장뜰두레놀이의 유래는 고려시대 청당현에 특산물을 공급하던 사람들이 불렀던 노동요라고 알려졌다. 증평 여러 마을에서 구전되던 모찌는 소리, 모심는 소리, 논매기 소리 같은 두레 농요를 기록으로 남기면서 장뜰두레놀이를 만들고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에 출연하여 상을 받기도 했다. 장뜰두레놀이는 농사와 관련된 노동요를 풍장과 함께 구성한 놀이라고 한다.
장뜰두레놀이의 전통이 이어지는 남하리 마을에는 미륵불이라고 알려진 돌부처가 있다. 공식 이름은 증평 남하리 석조보살입상으로 충청북도 유형문화재다. 이 돌부처에도 옛날이야기가 내려온다. 돌부처 일대 땅을 다 가지고 있던 부잣집에서 시주하러 온 스님에게 소의 오물을 퍼주었다. 주인의 심성을 고쳐주고자 스님은 돌부처를 돌려놓으면 집안에 재물이 더 늘어날 것이라는 거짓말을 흘렸다. 재물에 눈이 먼 주인은 스님 말대로 돌부처를 북쪽으로 돌려세웠는데, 그 이후 가세가 기울고 집안이 풍비박산 났다고 한다.
말세우물을 보고 보강천을 거슬러 광덕사 미륵불 앞에 서다
삼기천을 뒤로하고 보강천 최상류로 향하는 길에 말세우물의 전설이 내려오는 증평읍 사곡리를 들렀다.
말세우물의 공식 이름은 증평 사곡리 우물로 충청북도 기념물이다. 전설에 따르면 이 마을에는 우물이 없어 먼 곳에서 물을 길어다 먹었다. 1456년에 한 노승이 마을을 지나다 목이 말라 물을 찾았는데, 한 아낙이 먼 데까지 가서 물을 길어다 주었다. 그 정성에 감동한 스님은 큰 나무가 있는 곳을 가리키며 저곳을 파면 물이 샘솟을 것이라고 알려주며, 가뭄에도 마르지 않고 장마에도 넘치지 않을 것이나, 나라에 난리가 나면 물이 넘칠 것이요, 그렇게 세 번째 물이 넘치면 말세가 찾아올 것이라는 말을 남기고 떠났다. 1592년 임진왜란, 1910년 강제한일합방 때 우물이 넘쳤고, 1950년 6월24일에는 우물물이 넘치려고 했다.
국난을 알리는 우물, 전설의 신비함 보다 그 이야기에 담긴 한 사람의 고운 마음이 사람의 마음을 움직여 마을 사람들을 이롭게 했다는 것에 마음이 간다.

말세우물. 우물 뒤에 말세우물 이야기를 새긴 비석이 있다



보강천을 거슬러 오른다. 물줄기는 여러 갈래로 갈라졌다. 증평을 지나 괴산 사리면 노송리 송오저수지, 소매리 백마저수지(소매저수지)를 들렀다. 물줄기는 두 저수지 위로 계속 이어졌다. 괴산 백마산과 보광산에서 시작된 물줄기가 두 저수지에 모였다 다시 흐르는 것이다. 그렇게 흐르는 물줄기가 증평으로 흘러드는 곳이 도안면 석곡리와 도당리다. 그곳을 지나면 도안면 광덕리에서 흘러온 이름 없는 물줄기가 보강천과 만나는 지점이 나온다. 그 풍경을 석곡교에서 보고 이름 없는 하천을 거슬러 광덕리 광덕사를 찾아갔다.
광덕사가 있는 마을의 옛 이름이 미륵댕이골이다. 신라 말기 혹은 고려 초기부터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미륵불이었으니, 예로부터 그곳에 살던 사람들의 기원은 또 얼마나 많이 미륵불에 새겨졌겠는가. 그렇게 마을 이름은 미륵댕이가 됐고, 지금도 무엇에든 기대어 마음의 짐을 덜고 복을 비는 기원의 마음이 쌓이고 있다.
보강천 냇가 마을 미륵댕이를 지키는 미륵불과 300년 느티나무 고목
미륵불이 있는 미륵댕이 마을은 증평읍 송산리에도 있다. 두타산에서 시작된 이름 없는 물줄기가 흘러와 보강천과 만나는 합수지점에서 300m 정도 거리에 있는 미암리 사지 석조관음보살 입상과 마을이 그곳이다.

미암리 석조관음보살입상과 300년 느티나무



송산리에 있는 미륵불은 고려시대 것이란다. 손에든 연꽃 줄기 끝을 어깨로 받친 채 어딘가 바라보는 미륵불의 시선이 향한 곳을 보았다. 보강천이 흐르는 증평의 뜰, 미륵불은 그 땅에 살던 사람들의 안식을 바라는 마음이었을까? 미륵불 옆에는 300년 넘게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느티나무 고목 한 그루가 있다. 미륵불과 고목에 소원을 말했던 사람들 모두 소원을 이루기를 빌었다. 그리고 세상 모든 사람들이 올 한해 삿된 기운을 물리치고 만복을 누리게 해달라고 또 빌었다.
[정칠월 이팔월 삼구월 사시월 오동지 육섣달 내내 돌아가더라도 일년하고도 열두 달 만복은 백성에게 잡귀잡신은 물알로 만세유전을 비옵니다] -액맥이 타령의 한 대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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