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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주간지 K-공감
너무 친해지려는 회사 선배가 부담스러워요
'신기율의 마음 상담소'


내담자 사연
저는 2023년 초, 20년간의 전업주부 생활을 뒤로하고 대형할인점 물류 팀에 입사했습니다. 오십이 다 된 나이에 새로운 일에 도전한다는 건 정말 큰 용기를 낸 어려운 일이었어요. 특히 걱정했던 부분은 사람들과의 관계였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내향적인 성격 탓에 쉽게 사람을 사귀지 못했거든요. 그런 저에게 같은 팀에서 일하던 선배가 먼저 다가와 줬습니다.
그 선배는 회사업무를 훤히 꿰고 있으면서 다른 부서 직원들이나 상사들과도 친분이 두터웠습니다. 선배 덕분에 어렵지 않게 사람들과 친해지고 업무를 익히는 데도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친분이 쌓일수록 사소한 충돌이 생기기 시작했어요. 선배는 사사건건 훈수를 두며 간섭했고 참석하기 싫은 모임이나 자리에도 저를 불러냈습니다. 혼자서 차를 마시거나 점심을 먹고 싶다고 하면 그런 태도는 사회생활에 도움이 안 된다며 나무랐지요. 선배와 좀 더 친밀한 사이가 되려면 이런 불편한 마음도 스스럼없이 공유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조심스럽게 제 마음을 드러냈습니다. 하지만 그날 이후부터 선배의 태도가 변했어요. 저를 이해한다고 말은 했지만 기분이 많이 상했던 거 같아요. 얼마 전부터는 마주쳐도 모르는 척하고 다른 동료에게 제 험담을 하고 다닌다는 소문도 들었습니다. 지금은 회사에서 매일 마주쳐야 하는 선배가 너무 불편합니다. 이쯤에서 제가 일을 그만두는 게 좋을까요?




마음 상담소 답변
사회적 관계에서 일어나는 갈등을 해석하는 용어 중에 ‘조모’와 ‘포모’라는 말이 있습니다. 조모(jomo·joy of missing out)는 놓치는 것의 기쁨이란 뜻입니다. 조모족은 가기 싫은 회식에 나가지 않고 하기 싫은 일은 거부하며 자신만의 즐거움을 추구합니다. 사회적 평판이나 기회를 애써 잡으려고 하지도 않지요. 그런 기회를 놓치는 대신 자신의 생활을 즐기는 것에 만족합니다. 포모(fomo·fear of missing out)는 놓치는 것을 두려워한다는 뜻입니다. 포모족은 관계에서 소외되는 것을 두려워합니다. 그래서 자신의 취향이나 성향과 상관없이 참석할 수 있는 모임은 가리지 않고 참여하며 되도록 많은 사람에게 좋은 평가를 받으려 애씁니다.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서는 더 많은 사람에게 다가가야 한다고 생각하면서요.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고 싶어 하는 내담자는 조모족이고 사회적 관계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선배는 전형적인 포모족입니다. 서로 다른 ‘관계 성향’을 지닌 두 사람이 급속도로 가까워졌으니 당연히 갈등이 일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이때 어느 한쪽이 옳고 다른 쪽은 틀렸다고 판단해서는 안 됩니다. 다만 서로 다른 가치관의 차이를 지니고 있을 뿐이지요. 이런 차이를 좁히기 위해서는 서로 공감할 수 있는 정서적 교집합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 교집합에는 상대와 나의 성향을 동시에 만족시키는 심리적 거리감에 대한 합의가 있어야겠지요.
김혜남 작가는 ‘당신과 나 사이’라는 책에서 관계에 따른 거리감을 수치로 환산해 제시합니다. 가족과는 20㎝ 정도 떨어지는 것이 적당한 거리입니다. 20㎝는 떨어져 있지만 언제라도 안아주며 미세한 감정변화를 다독거릴 수 있는 거리를 말합니다. 가까운 친구와는 손을 뻗으면 닿는 46㎝의 거리가 필요합니다. 46㎝는 같은 곳을 바라보면서 필요에 따라 상대를 관찰할 수 있는 최소한의 간격을 만들어 줍니다. 직장동료와는 서로 손을 뻗어야 닿게 되는 1.2m가 최적의 거리입니다. 그 정도 떨어져 있을 때 상대에게 영향을 받지 않으면서 변화나 표정을 읽을 수 있는 적당한 틈새가 만들어집니다.
내담자는 이런 기준보다 조금 더 멀리 선배를 두고 싶어 했고 선배는 좀 더 가까운 사이가 되고 싶었던 거 같습니다. 친밀한 관계를 맺기 위해서는 먼저 상대를 알아가고 이해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내담자는 새로운 환경에 빨리 적응하고 싶은 마음에 너무 성급하게 선배에게 의지하며 속마음을 내보였습니다. 선배는 누군가에게 의지하고 싶은 내담자의 조급한 마음을 알아차리고 자신의 방식대로 길들이려 했고요. 급한 마음에 상대를 존중하고 배려해야 한다는 가장 중요한 부분을 놓치게 된 거죠.
새로운 관계를 맺으며 자신에게 최적화된 심리적 거리를 만들 때까지 누구나 위기를 겪게 됩니다. 불편해진 관계에 지쳐 일을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어요. 하지만 이럴 때일수록 자신의 자리를 지키며 담담한 마음으로 상대를 바라볼 수 있는 성숙한 태도를 가져야 합니다. 담담함을 유지하려면 자기 자신을 한심하게 생각하거나 상대에게 책임을 전가하며 비난의 화살을 쏘아서는 안 됩니다. 대신 불편한 마음을 감내하며 성급한 마음이 만들어낸 결과를 받아들이고 반성하는 성찰의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우리는 타인과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면서도 자신만의 영역을 지키는 힘을 키우게 됩니다. 이런 영역이 확고해질 때 서로 상처받지 않으며 외롭지 않은 독립적 관계를 맺을 수 있겠지요. 겨울이 지나면 봄이 오듯 떠난 사람의 빈자리는 또 다른 인연으로 채워집니다. 그때까지 자신의 자리를 지키며 주위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맺기 위한 노력과 시도를 멈추지 마세요. 일의 실패가 성공의 밑거름이 되듯 관계의 난관 역시 성공적인 관계의 토대가 될 거라 믿으면서요.
최종솔루션
“직장동료와는 서로 손을 뻗어야 닿게 되는 1.2m가 최적의 거리입니다. 그 정도 떨어져 있을 때 상대에게 영향을 받지 않으면서 변화나 표정을 읽을 수 있는 적당한 틈새가 만들어집니다.”

EDITOR 편집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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