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삶의 풍경이 머무는 곳
참돔 회
'글. 이정연'

잘 차린 한 끼의 식사는 의사 위의 의사요, 주부가 가족을 위해 올리는 가장 진실한 기도라고 생각한다. 아무리 바빠도 다섯 가지 식품군이 골고루 포함된 음식이 식탁에 놓이게 하고 그 음식을 가족 모두 잘 먹어서 영양에 불균형이 되지 않도록 애쓴다.
몸이 불편하신 아버님 어머님이 우리 집으로 오시고 두 달이 넘었다. 연로하신 데다 환자시니 식욕이 없고 그러니 나는 자연 식단의 균형보다 어른들이 수저가 자주 가는 음식을 놓게 된다. 하루 이틀, 날이 갈수록 영양의 균형은 깨지고 어른들의 입맛에 맞는 음식만 놓게 되니 메뉴도 단조롭다. 소금은 줄이고 고춧가루는 아예 못 쓴다. 하루쯤 얼큰한 음식을 먹고 싶은데 매운 걸 질색하시니 풋고추 한 개를 들고 찌개에 넣을까 말까 망설이다 도로 냉장고로 넣고 만다. 물론 따로 얼큰하게 한 뚝배기 끓여도 되지만 시간이 많지 않고 그렇게 따로 먹는 우리를 보고 아버님 어머님이 미안해하실까 봐 그것도 눈치가 보인다.
퇴근 시간, 오늘은 또 뭘 해 먹나 하고 고민에 빠져있는데 지인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지금 막 참돔 한 마리를 보냈으니 곧 찾아서 드시라고. 아버님이 방사선 치료차 우리 집에 와 계시고 잘 드셔야 한다고 했더니 기억하고 계셨나 보다. 아이스박스를 풀어보니 정성스레 포장한 갈치 여러 팩과 참돔 한 마리가 화려한 자태로 누워있다. 우린 평생을 가도 이런 자연산 참돔 회를 통째로 먹어보는 행운은 누릴 수 없을 것이다.
조심스러워서 나는 만질 엄두도 안 난다. 남편더러 회를 좀 뜰 수 있겠냐고 했더니 웃음 가득한 얼굴로 그런다고 했다. 칼을 내주면서 좀 갈아서 써야 할 거예요. 회는 칼이 잘 들어야 하는데 했더니 칼 안 들어도 잘할 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누워계셨던 아버님도 참돔의 화려한 자태를 보고는 식욕이 도는지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구경을 하셨다. 젊었을 때 낚시를 즐기셨던 아버님은 이런 돔을 사려면 요새는 적지 않은 돈을 줘야 할 거라시며 아들이 회 뜨는 모습을 지켜보셨다.



남편은 거실에 신문지를 깔고 큰 쟁반에 돔을 놓고 손질을 시작하는데 회를 떠본 경험이 없으니 참돔만 이리저리 뒤집으며 폼을 잡을 뿐 미적거렸다. 보다 못해 성대 제거 수술을 받으신 아버님이 손짓·발짓 동원해서 설명해 보지만 자신도 문과 출신이라 도구를 가지고 뭘 하는 건 도통 소질이 없다는 남편은 비늘도 벗기지 않은 채 썰기부터 시도한다. 깜짝 놀라 우선 비늘을 벗겨서 생선을 깨끗하게 만들어야 한다고 했더니 비늘을 벗기기 시작하는데 거친 비늘이 거실 여기저기로 튄다. 어머니는 비늘이 튈 때마다 재빨리 물티슈 한 장을 뽑아 쫓아가서 잡아다 놓곤 하셨다. 어머니의 모습이 개구리 해부하는 선생님 옆에 앉아있는 학생같이 진지해서 나는 혼자 웃었다.
오늘 밤 안으로 회는 먹을 수 있는 것일까. 취사 완료되었다는 밥솥을 보며 횟집이라도 맡길 걸 하면서 후회를 했다. 푸른 해원 다정한 친구들을 두고 잡혀 온 것도 억울한데 도마 위에서 참돔을 또 한 번 죽게 하는구나. 마음 같아서는 내가 하고 싶지만, 아버님 어머님이 보고 계시니 남편 체면은 세워 주어야 한다. 하긴 나도 회를 떠본 경험이 없으니 잘은 못하겠지만 그래도 주부 경력 25년이 넘었으니 칼 쓰는 요령은 내가 나을 것 같았다.
생선회 뜰 때는 무엇보다 칼이 잘 들어야 한다. 생선이 언제 제 몸이 모두 저며져 접시에 올려도 아픔을 모르도록 귀신같이 떠야 하는데 무딘 칼로 사람도 생선도 고생한다. 값비싼 생선이 아까운 건 둘째 치고 죽은 돔의 영혼에 진심으로 미안하다. 실제로 횟집에 가면 얼마나 날렵하고 잽싸게 회를 뜨는지 광어는 자신이 죽은 줄도 모르고 제 살이 참 이슬과 함께 주당의 입으로 들어갈 때까지 눈만 동그랗게 뜨고 쳐다본다.
그 정도까지는 아니어도 제발 빨리 손질을 끝내기라도 했으면 좋겠다. 저녁 내내 남편은 돔을 주무르다 만신창이 수준으로 만들어 썰어 놓은 무채 위로 올렸다. 아버님은 모처럼 고단한 몸을 일으켜 상기된 표정으로 구경을 하셨고 어머니도 이렇게 귀한 생선회 맛은 어떨까 설레며 어서 맛볼 수 있기를 기다리셨다. 나는 지인의 마음 씀이 고마워서 가슴이 따뜻했고 남편은 오랜만에 제대로 소주 한잔할 안주가 생겼으니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회를 먹는 동안 나는 멸치와 솔치 디포리 몇 마리를 넣고 육수를 내어 회 뜨고 나온 돔을 통째로 넣고 지리를 끓였다. 냄비 속에서 돔이 이제야 나는 억울하다는 듯이 국물을 뽀얗게 물들인다. 나는 미식가는 아니지만, 생선회를 먹을 때는 좋은 횟집에 가서 먹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능숙한 요리사가 날렵하게 생선살을 뜨고 그 살들은 파르르 떨며 접시에서 다시 꽃처럼 피어난다. 그 꽃잎 같은 살점을 한 점 집어 연인과 입맞춤하듯 소중하게 혓바닥에 올린다. 36.5도 따뜻한 입속에서 꽃잎은 알싸한 소주와 만난다. 살며시 퍼지는 알코올 향기에 거친 바다의 온갖 시름을 잊고 긴장을 놓아야 비로소 생선으로서 제대로 생을 다한 거로 생각한다.
내 걱정과는 상관없이 아버님과 어머님은 행복한 표정으로 맛있다. 맛있다 하면서 잘 드셨다. 회는 제대로 뜨지 못했지만, 저녁 내내 애쓴 아들이 고마운 것이다. 내가 아무리 마음 써서 저녁상을 봐 드려도 지금까지 식탁에서 아버님 어머님의 저런 행복한 얼굴은 못 보았다. 며느리가 동동거리며 차려 놓은 밥상이니 그저 성의껏 드신 것이다. 절대 미각이란 이론으로나 가능한 것일 뿐 요리의 완성도가 곧 맛을 전부를 결정하는 건 아니다. 때론 요리하는 사람의 정성이 맛의 수준을 넘었을 때 식사를 기다리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인다. 그때의 요리는 단순한 요리가 아니라 요리에 감동을 더한 특별한 맛이 되는 것이다. 미숙한 아들의 요리가 부모님께 특별히 행복한 밥상을 드렸다. 참돔 한 마리가 아버님 어머님을 지극한 맛의 천국으로 이끌었다.

EDITOR AE류정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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