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삶의 풍경이 머무는 곳
[수필] 난바다에 배를 띄우며
'글. 최명임'

12월은 아쉽고 착잡하지만, 매듭달이다, 누군가는 기억하고 싶지 않은 해, 마지막 달이고 또 누구는 뿌듯한 결실에 한껏 들떠있는 행복한 달이기도 할 거다. 그런 모든 이에게 새달은 신신한 얼굴로 희망을 안고 찾아온다. 그래서 12월은 막달의 임부처럼 기쁨과 설렘의 달이기도 하다.
돌아보니 감사하다. 난바다로 떠났다가 무사 귀환한 어부가 안도의 숨을 쉬며 배에서 내리는 기분도 그랬을 거다. 조금 더 노력할걸, 좀 더 많이 사랑할 걸, 그때 그 일을 시작했더라면 하고 후회도 남지만, 나는 이만큼의 진보도 감사하다. 쌀독에 쌀이 비는 일이 없었고, 변함없는 일상이었으나 안녕하고, 짬을 내어 글을 쓸 여력이 있었으니 그만하면 족하다. 소박한 밥상 앞에서도 마음이 한가로우니 나이는 허투루 쌓여 가는 것이 아닌가 보다. 그보다는 내가 올린 기도 덕분이 아닐까 하고 곰곰히 생각해 본다.
하루를 살아내는 일이 조마조마하다. 더러는 신열에 가슴앓이하고 막막한 지경에 빠지는 날도 있다. 한 해를 살아내는 버거움이야 말해 무엇 하리. 전쟁터로 나서는 병사의 간절함으로 하루하루 시작해야 하거늘, 타성에 젖어 자주 기도를 잊어버린다.



나의 쌀독에 쌀이 텅 비어 버린 그해부터였다. 살아내어야 할 이유가 참 많았다. 새해 첫날 첫 시간에 가장 큰 의미를 부여하고 나만의 의식을 치르기 시작했다. 그 첫날의 의식을 바탕에 두고 나의 일 년은 물 흐르듯 흘러갈 것이라고 최면을 걸어둔다.
기도는 인간의 오만이 바벨탑에서 내려와 가장 낮은 자세로 임하는 겸손의 언어이다. 내면에 깔린 원초적 두려움은 완전히 해소될 수 없지만, 저항할 수 없는 절대자 앞에 경외하는 마음으로 의식을 치르면 안심이 된다. 예측할 수 없는 내일이 미더워지고 운기를 더해 행복해지리라는 믿음 아래 우리는 저마다의 기도로 오늘을 나고 있지 않은가. 혹, 새해 첫날 밀려드는 만인의 기도로 하느님은 도리질하시지는 않을는지.
해신제는 해마다 난바다로 떠나는 어부의 안녕과 풍어와 무사 귀환을 바라는 의식이다. 첫날 바치는 나의 의식처럼 한해살이를 위한 간절하고도 절절한 기도이다. 가족의 염원을 배에 싣고 배웅을 받으며 떠나는 그들의 뒤에는 눈물겨운 기도가 이어진다. 정화수를 떠놓고 비손하는 어미와 아내의 기도는 귀항하는 날, 사립에 들어서는 어부의 손을 잡고서야 끝났으리라.
삶의 무게를 배에 싣고 언제나 바다로 향하는 어부의 그 대단한 향일성에 나는 존경심을 금치 못한다. 해신제로 두려움을 내려놓고 출항하여도 먼바다의 해풍이 만만했으랴.
어부의 바다는 미지의 세계, 늘 두려운 존재이다. 바다가 성을 내고 태풍이 몰아치는 날이 얼마나 많았을까. 도중하차 할 수 없는 극한의 공간에서 죽음과 같은 고통을 맛보기도 했을 거다. 그 순간에도 어부는 오로지 그가 바친 기도와 믿음 하나로 귀항의 꿈을 버리지 않았으리라. 두려움을 용기로 바꾸고 희망을 얻어 떠난 어부의 간절한 기도처럼 나 또한 해신제로 생의 한바다에 배를 띄워놓고 안전한 귀향을 꿈꾸며 일 년을 보냈다. 그 일 년이 어느새 수십 일 년이 되었다.
마음을 가다듬고 기도를 쓴다. ‘새해에는 부디 이렇게 해주소서.’라는 나의 간곡한 기도를 편지지에 담아 첫날 첫 시간에 땅에 묻는다. 절절한 소망이 있는 해는 ‘더도 말고 그 바람만 이루어 주십시오.’라고 일방적 요구를 한다. 우체통에 넣어도, 땅에 묻어도, 성상 앞에 바쳐도 아니 가슴만 절절하여도 그분은 모르실 리가 없다. 이 의식을 즐기는 이유는 내 기도가 만물의 모태인 땅의 기운을 받아 화살처럼 하늘로 오르리라는 믿음 때문이다. 그런 편지는 중앙공원 소나무 밑, 무심천 자락과 양성산 허리, 부모산에도 군데군데 묻혀있다. 간절한 기도에 무심하실 때는 원망이 들기도 하였지만, 이제는 어떤 답장을 받더라도 겸손하게 순응하며 살아가려 한다.



첫 편지는 빈 쌀독이 차고 넘치게 해달라는 절박한 기도였다. 개화를 서두르는 해바라기가 온 날을 해 바라기만 하였듯이 나도 그 순간에는 향일 식물이 되었다. 뿌리는 땅속으로, 줄기는 오롯이 태양을 향해 끈질긴 굴성으로 뻗어 나갔으니 해바라기 꽃은 그토록 눈부시지 않았던가.
나의 정원과 밭둑에 해바라기가 무성하게 핀 가을날 나도 그 지독한 열병에서 벗어났다.
출항 전 해신제는 기도다운 기도이다. 배에 오른 선원들의 바람은 소박하고 겸손했다. 한 척의 배에 담아 올 것이 어디 오만이던가. 어부는 그 기도의 힘으로 대양을 누비다 안전한 항로를 따라 지금 만선으로 돌아오고 있을 거다. 다시 오리라는 희망을 남겨두고 대해의 푸른 물결을 뒤로하고 의기양양하게 돌아오고 있으리라. 만선이 아니면 또 어떤가, 아내가 차려준 따뜻한 저녁 밥상을 받고 노모의 안심을 느끼며, 울렁이던 배멀미를 삭이며, 내일을 또 꿈꾸어볼 테니.
구름도 한가로운 12월이다. 생의 한바다에서 또 한 해를 살아 낸 사람들의 귀항하는 소리가 들린다. 나도 무사 귀환을 감사드리며 새해 첫날에 치를 의식을 준비해야겠다. 막달의 임부처럼 설레기도 하고 막연한 두려움이 툭툭 나를 건드리기도 한다.
나는 새해에도 기도라는 미더운 무기를 장착하고 전쟁터로 나서는 병사처럼 난바다에 배를 띄우려고 한다.

EDITOR AE류정미
최명임 작가
이메일 : cmi3057@naver.com
2014년 문학저널 신인상
충북수필문학회, 한국문인협회, 한국산문 회원, 내육문학회원 / 충청타임즈 ‘생의 한가운데’ 필진(전)
청주교차로 신문 ‘삶의 풍경이 머무는 곳’ 필진(현)
우리 숲 이야기 공모전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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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시니어 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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