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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수필] 어머니의 기억

2021-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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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수필] 어머니의 기억
'글. 박종희'

    계절은 늘 누군가의 손을 잡고 돌아온다. 매화꽃이 세상을 물들일 때면 하얀 기억 속을 걷던 어머님 생각이 난다. 기억은 잊었어도 몸짓말로 나를 반기던 어머님이 올해도 어김없이 봄을 데리고 왔다.
    빼꼼히 열린 병실 문 사이로 나를 발견하고는 쑥스러운 듯 당신 코를 잡아당긴다. 기다렸다는 마음을 들키지 않으려는 어머님만의 몸짓이다. 어머님 눈에 낯익은 눈부처가 들어앉는가 싶더니 이내 잇몸을 다 드러내며 까르르 웃는다. 병실에서 무에 그리 웃을 일이 있을까만 며느리를 웃게 하려는 어머님의 배려일 성싶다.
    아버님이 돌아가셨을 때도 꼿꼿하던 어머님이 큰아들을 앞세우고 나서는 맥없이 들어앉았다. 불덩이 같은 오 남매를 품어 키우느라 당신 몸이 녹아내리는 것도 모르고 살았던 어머님한테 아주 특별한 손님이 찾아온 것이다. 
    눈에 띄게 움직임이 줄어드는가 싶더니 어머님은 마침내 문을 닫아걸었다. 철통같이 벽을 친 어머님은 앉은자리에서 볼일을 보는 일이 일쑤였다. 퇴근하면 어머님과 씨름하느라 아침이 빨리 왔다. 남편과 나도 슬슬 지쳐갔다. 방향감을 잃고 당신의 시간에 갇힌 어머님을 바라보는 것이 마치 형벌 같았다. 
    하루가 다르게 낯설어지는 어머님이 음식에 집착하기 시작했다. 금방 드시고 돌아서도 헛헛해하며 밥 안 준다고 어깃장을 놓았다. 식탐이 늘면서 이상한 버릇도 생겼다. 어머님은 서랍에서 옷을 끄집어내 순서 없이 겹쳐 입었다. 
    편찮으시기 전에도 체격이 좋았는데 치매 증세가 나타난 뒤에는 몸이 더 무거워졌다. 과식하셨는지 방에 구릿한 냄새가 떠다녔다. 그날따라 어머님은 내복 위에 고쟁이를 입고 그 위에 바지, 몸빼, 한복 치마 등 아랫도리에만 서너 개를 껴입어 마치 눈사람 같았다. 몸도 성치 않은 분이 그 많은 옷을 어찌 입으셨는지. 나를 기다리는 지루함을 옷 껴입는데 몽땅 허비한 것처럼 벗긴 옷이 빨래통에 가득했다. 후유, 한숨이 나오고 울화가 치밀었다. 
    옷 벗기는 잠깐 동안에도 까르륵 웃던 어머님이 정색하시더니 다시는 옷을 많이 입지 않겠다고 하셨다. 그러나 그게 어디 당신 마음대로 되는 일인가. 옷이라면 보이는 대로 주워 입는 어머님은 중학생이던 딸애의 청바지를 입다가 뒤로 넘어져 낙상할 뻔한 일도 있었다.



    그렇게 예고 없이 찾아온 치매는 호시탐탐 집안을 들쑤시며 엉망으로 만들었다. 
    우여곡절 끝에 어머님을 노인 요양병원으로 모셨다. 처음 며칠은 집에 가겠다고  애를 태우더니 갈수록 소리 내 웃고 노래도 곧 잘 불렀다. 웬만해선 화내지 않고 늘 웃는 어머님을 간호사들과 간병인들도 좋아했다. 
    가끔 혀를 돌려 밥알을 뱉어내는 일 말고는 그다지 애먹이지 않던 어머님이 달라졌다. 간병인들이 어머님이 자꾸 옷을 벗어 걱정이라고 했다. 처음엔 대수롭지 않게 여겼는데 날이 갈수록 마음이 쓰였다. 
    출근하기 전에 어머님한테 들렀다. 담당 간병사가 어젯밤에도 옷 벗느라 잠을 못 자 이제야 주무신다며 시큰둥했다. 입을 반쯤 벌린 채 세상모르고 주무시는 어머니를 보니 야속한 생각도 들었다. 도대체, 뭐가 문제라서 밤마다 옷을 훌러덩 벗어젖히는지. 어머님을 지키느라 눈에 핏발까지 섰다는 간병사의 뚱한 표정에서 두려움이 읽혀졌다. 
    아침도 거르고 까무룩 주무신 어머님이 기분 좋게 눈을 떴다. 모처럼 정신도 맑으신지, 작은며느리 왔다며 좋아하시던 어머니가 갑자기 뜻 모를 말씀을 하신다.
    “ 나, 이제 옷 많이 안 입어”
    “ 이거 봐, 옷 한 개만 입었어.”라고 하시며 얇은 환자복을 하얀 속살이 훤히 보이도록 들추어 보였다. 
    짧은 그 순간, 어머님의 표정과 겹쳐지는 풍경 한 장면이 있었다. 매일 밤 여러 개의 옷을 덧입고 실수해 옷 벗기느라 어머님과 내가 실랑이하던 모습이었다. 사람의 기억 중 상처가 컸던 것은 트라우마로 남는다더니. 설마, 어머님이 몇 년 전 그 기막히던 시간을 다 기억하시는 것일까. 



    절박하면 한계를 넘는 행동이 나오는 것처럼 옷을 벗기면서 매정하게 군것이 어머니 가슴에 박혔던 것 같다. 손놀림도 자유롭지 못한 어머님이 며느리 고생 안 시키겠다는 마음으로 내복까지 벗었다고 생각하니 명치끝이 뻐근했다. 
    생각해보니 그때 나는 어머님이 왜 옷을 덧입는지 알려고 하지 않았다. 밤낮없이 헝클어진 어머님의 머릿속은 헤아리지 못하고 옷 벗기고 빨래하는 것이 힘들다고 그저 나 힘든 것만 알아주길 바랐던 것만 같다. 한 번쯤 손을 맞잡고 앉아 어머니 속을 시끄럽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 들어드렸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당시 어머님은 당신 목숨보다 귀히 여기던 큰아들을 언 땅에 묻고 맨몸으로 바람을 맞고 서 있었다. 어머님은 뻥 뚫린 가슴으로 숭숭 파고드는 매운바람을 옷으로라도 막아내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환자복을 들추면서 무슨 장한 일이라도 해낸 것처럼 우쭐해하시는 어머님을 보니 지나온 시간이 한없이 부끄러워졌다. 갈수록 낯섦이 분명해지는 가족들 사이에서 당신이 지워지는 것도 모르던 어머님. 가까웠던 사람들이 하나둘 물설어질 때 얼마나 두려웠을까. 
    그깟 옷 껴입는 것이 무에 그리 대수라고 매일 잔소리하며 야박하게 굴었는지. 그 일이 있은 뒤에도 몇 차례 더 옷 벗는 일로 애를 먹이던 어머님은 더는 옷 벗을 걱정 없는 곳으로 떠나셨다. 세상에서의 무겁고 힘겨운 기억은 다 내려놓고 꽃잎처럼 가벼운 영혼으로 훨훨 날아가셨다. 
    나를 당신의 조카딸로 기억하면서도 내 눈에 들고 싶어 애쓰던 어머니가 그곳에서는 이제 편안하신지… 매화꽃이 하얀 길을 내는 봄이 오면 어머님 생각에 밤이 더 길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