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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류를 찾아 길을 걷다

  • 옛날 관동 지역은 풍류객이라면 꼭 한번 찾아봐야 할 곳으로 손꼽혔다. 선비의 버킷리스트라 하겠다. 경포대와 선교장, 오죽헌이 강릉을 대표하는 곳이라면 평창에는 월정사, 양양은 낙산사, 속초는 신흥사가 있다. 풍류객의 버킷리스트 관동 『걷기예찬』의 저자 다비드 르 브르통은 ‘걷는 것은 자신을 세계로 열어놓는 것이다. 발로, 다리로, 몸으로 걸으면서 인간은 자신의 실존에 대한 행복한 감정을 되찾는다’라고 했다. 그래서일까, 오늘날의 ‘걷기’는 단순한 이동이나 노동의 개념이 아닌 ‘실존을 향한 발걸음’이다. 그와 동시에 그 걸음이 향한 종착지는 언제나 행복한 감정에 맞닿아 있다. 결국 노동이나 이동의 범주를 벗어난 인간의 걷기는 신체 보다 정신, 즉 마음에 초점이 가 있다. 옛날 관동 지역은 풍류객에게 소위 오늘날의 ‘핫플레이스’ 였다. 강릉에는 경포대?선교장?오죽헌, 평창에는 월정사, 양양은 낙산사, 속초는 신흥사가 있다. 강릉을 제외하면 언뜻 산사의 길 같으나, 풍류객 관점에서 본다면 이만한 곳이 또 있을까 싶다. 산사가 있는 곳은 산세가 우람하고, 숲이 울창한 데다, 골이 깊다. 게다가 인적이 뜸한 곳에 자리 잡은 터라 산사를 찾아가는 발걸음 자체가 풍류인 셈이다. 자연 속에 머묾으로써 마음 상할 일도 없고, 마음 내려놓기에도 그만이다. 또한 울창한 산은 물론이고 탁 트인 바다까지 벗하고 있으니 풍류객이 반할 만한 조건은 두루 갖춘 셈이다. 걷기 예찬론자인 브르통이 말한 것처럼 풍류객은 자연 속에서 걷기를 통해 자신의 실존에서 행복한 감정을 되찾지 않았을까. 의상대사의 창건 설화가 전해오는 명승 양양 낙산사 의상대와 홍련암 산사를 오가며 깨우친 풍류, 평창 월정사 관동 풍류의 길 가운데 먼저 발길이 닿은 곳은 오대산 국립공원에 자리한 월정사이다. 평창을 찾은 여행자라면 한 번쯤 이곳을 들렀으리라. 그러나 불교 신도가 아니라면 월정사보다 절까지 이르는 숲길에 더 마음이 빼앗겼을 터이다. 이름하여 ‘오대산 월정사 전나무숲길’이다. 월정사 전나무 숲은 일주문부터 금강교까지 1km 남짓한 숲길이다. 길가에 늘어선 전나무가 무려 1,800여 그루이고, 평균 수령은 80년이 훌쩍 넘었다고 한다. 숲을 뚫고 스며드는 찬연한 빛 한줄기가 진리를 밝히는 등불처럼 빛을 발한다. 전나무 숲길과 월정사는 맞닿아 있어 숲길을 걷다 보면자연스레 천왕문을 통과한다. 발걸음은 이윽고 월정사 경내에 접어든다. 월정사는 자장율사가 중국 오대산에서 문수보살을 만나 깨우침을 얻은 뒤 오대산에 초막을 짓고 수행했는데 그것이 오늘날의 월정사가 되었다. 여러 차례 전란을 겪으면서 사찰 대부분이 소실되는 비운을 겪었다. 하지만 1964년 화엄학의 대가인 탄허스님이 적광전을 중건 함으로써 명실상부 문수보살과 성산에 걸맞은 대가람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적광전 맞은편에 우뚝 선탑은 국보 평창 월정사 팔각 구층석탑이고 그 앞에 있는 좌상은 보물 석조보살좌상을 본떠 만든 것이다. 실물은 월정사성보박물관에 있다. 팔각 구층석탑은 상륜부 해체보수공사 중이어서 실물을 가까이서 볼 수 없다. 左)월정사 전나무숲길에 발을 들이면 천년의 세월이 온몸으로 느껴진다. 右)국보 평창 월정사 팔각 구층석탑 월정사 경내를 빠져나와 오대천을 따라 상원사까지 이어진 9km 남짓한 숲길을 ‘선재길’이라 부른다. ‘선재’란 불교 경전인 『화엄경』에 등장하는 동자승의 이름이다. 선재길의 종착지인 상원사는 신라 성덕왕 4년(705)에 창건된 참선 수행도량으로 명성을 떨쳐온 천년고찰이다. 이곳에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아름다운 종, 국보 상원사 동종이 자리한다. 오랜 세월 온 세상에 울려 퍼졌을 종소리. 그 은은함에 취해 경내를 걷는 사이 오대산 능선이 코앞에까지 와 있다. 선재길을 걸으며 선재 동자처럼 큰 깨달음은 얻지 못했을지라도 숲 내음에 가슴이 열리고 머리가 맑아졌으니 풍류는 충분히 만끽한 셈이다. 설악산천연보호구역의 품에 깃든, 속초 신흥사 설악산의 존재감은 실로 놀랍다. 울창한 산림과 위엄이 느껴지는 기암괴석과 봉우리. 사계절 다른 옷을 갈아입으며 대한민국 명산의 기준을 한 단계 끌어올린 으뜸 중의 으뜸 이다. 풍류를 안다면 그 누군들 설악산의 수려한 경관에 취하지 않겠는가. 그 빼어난 경관에 둘러싸인 고요한 산사가 있다. 신흥사를 찾아가는 길목, 설악산 소공원 입구에서 있는 반달곰 석상이 반긴다. 그 뒤로 하늘을 떠받치고 있는 듯한 우람한 암봉의 향연, 병풍처럼 웅장하다. 첫눈에 해발 1,708m 높이의 위엄이 느껴진다. 반달곰 석상을 뒤로한 지 10분도 채 되지 않아 신흥사 통일대불에 다다른다. 높이 14.6m, 좌대 높이 4.3m, 좌대 지름 13m, 광배 높이 17.5m, 불상에 사용된 청동만 108톤에 이르는 거대한 불상이다. 정면에서 바라보면 미간에서 백호가 반짝이 는데 지름 10cm 크기의 인조 큐빅이다. 민족통일을 기원 하는 뜻을 담아 조성했다. 불상을 뒤로하고 계곡 물소리에 이끌려 발걸음을 옮긴다. 다리 건너 신흥사가 모습을 드러낸다. 左)오대산 월정사 적광전 뒤뜰 右)신흥사 통일대불 주변에 연등이 걸렸다. 신흥사는 신라 진덕여왕 6년(652)에 자장율사가 창건한 뒤 조선 인조 20년(1642) 지금의 자리에 중창되었다. 강원도 유형문화재 신흥사보제루를 지나자 경내엔 석가탄신일을 맞아 화려한 연등이 주렁주렁 걸렸다. 그 뒤로 보물 속초 신흥사 극락보전이 고색의 멋을 한껏 머금은 채 자리를 지키고 있다. 신흥사의 중심 전각인 이 건물은 인조 25년(1647)에 처음 지어진 이후 여러 차례 수리를 거듭했다. 왕실에서 죽은 이의 명복을 빌고자 세웠다는 점이 특이하다. 이 같은 원찰의 성격을 잘 보여주는 현판이 보제루에 걸려 있다. 기단에 조각된 모란과 사자 모양 무늬, 계단 난간 소맷돌의 삼태극, 귀면, 용머리 모양 조각은 다른 사찰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것이다. 창문의 솟은 빗꽃살 문양은 고색 창연한 색채와 멋을 전하고 있다. 극락보전에는 보물 목조 아미타여래삼존좌상이 있다. 시인 묵객이라면 역시, 양양 낙산사 거침없이 날아오르는 갈매기의 날갯짓이 지친 일상에 활력을 더하는 곳, 양양이다. 이곳에 관동팔경 중 유일한 사찰인 낙산사가 있다. 낙산사는 신라 문무왕 11년(671)의 상대사가 창건했다. 남해 보리암, 강화 보문사와 함께 우리나라 3대 관음 기도 도량 중 하나이다. 1,350여 년 긴 역사를 이어왔지만 2005년 4월 5일 발생한 양양군 일대 대형 산불로 많은 전각이 소실되는 일이 발생했다. 이후 단원 김홍도의 〈낙산사도〉와 발굴조사를 근거로 조선 전기 가람배치 형태대로 원형에 가깝게 복원함으로써 천년고찰의 면모를 다시 찾게 되었다. 낙산사 관람은 일주문 방향이 좋다. 발을 들이면 소나무 명상숲길을 따라 길이 이어진다. 길을 따라 짙은 솔향과 봄날의 싱그러운 숲 내음이 가득하다. 화마가 삼켜버린 숲이 폐허를 딛고 새롭게 조성되었는데 화마의 흔적은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숲이 깊다. 左)홍련암에서 바라본 일출 右)강원도 유형문화재 낙산사 홍예문 숲길 끝자락에 강원도 유형문화재 낙산사홍예문이 반긴다. 1467년 세조가 행차한 것을 기념해 세운 무지개 모양의 돌문이다. 그 당시 강원도에는 모두 26개의 고을이 있었는데 각 고을에서 석재를 한 개씩 추렴해 건립했다고 하니 그 의미가 남다르다. 발걸음은 자연스럽게 보물 칠층석탑이 있는 원통보전으로 향한다. 원통보전은 2007년 복원된 것이지만 마당의 보물 칠층석탑과 원통보전 안에 있는 보물 건칠관음보살좌상은 화재 속에서 낙산사 승려들이 지켜냈다. 강원도 문화재자료 홍련암도 무사했다. 이 암자는 의상대사가 동굴 속으로 들어간 파랑새를 따라가 석굴 앞 바위에서 기도하다 연꽃 위의 관세음보살을 보고 세웠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해수관음상은 높이 16m에 이르는 거대한 불상으로 그 크기 때문에 일반인에게도 익히 잘 알려져 있다. 특히 화강암으로 만들어서 빛을 반사해 신비로움을 더한다. 낙산사 관람 마지막 코스는 의상대이다. 의상대사의 좌선 수행처였던 이곳은 해안절벽 위에 있는 정자로 일출명소로 유명하다. 그런 만큼 낙산사는 새벽에 찾길 권한다. 철썩거리는 파도 소리와 새벽 예불 소리가 뒤섞여 적막한 새벽을 깨우면 팍팍한 일상에 찌든 마음도 한결 깨끗해지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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