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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할마의 전성시대

  • 노동이라고 생각하면 기운이 빠진다. 당당하게 전성시대라 말하련다. 손녀 손자를 돌보는 할마와 할빠는 사회가 빚어낸 신조어다. 할머니와 엄마, 할아버지와 아빠의 합성어다. 주로 할마가 대부분이고 더러 할빠도 있다. 연륜이 주는 지혜와 육아의 다양한 경험과 어미 아비 못지않은 사랑으로 이 나라의 미래를 키우고 있는 노장들이다. 누가 뭐래도 애국하고 있다. 늘그막에 취미 생활이나 하고 여행을 다니지 왜 그러고 사느냐고 지인에게 타박을 받았다. 나 몰라라 하고 무조건 아비 어미에게 맡기라고 했다. 나도 그랬으면 좋겠다. 이쯤에서 걱정 없이 수필 교실에 가고, 문학 모임도 참석하고, 여행 가방을 들고 여유를 부리며 대문을 나서고 싶다. 아이들이 전적으로 엄마 품에서 행복하게 자라면 좋겠지만, 지금 사회에서 절대적이라고 말해버리면 모든 일이 어려워진다. 안팎으로 산더미 같은 일을 해내는 안사람들의 힘은 모름지기 이 나라의 바탕이 되고 있다. 능력 있는 그녀들이 현장에서 손을 떼고, 혹은 머리에 띠를 두르고 나서면 가장들은 물론 사회는 갈 곳을 잃어버릴 거다. 우리는 할마, 할빠라는 신조어가 생겨난 사회의 흐름을 거부할 수가 없다. 두 손녀를 돌보느라 이른 아침에 집을 나선다. 일 년을 청주에서 세종으로 새벽 출근을 하다가 힘에 부쳐 애들 옆으로 이사했다. 5층 할마와 6층 할빠는 육아를 돕기 위해 아예 합가했다. 요즘처럼 대가족의 장점을 놓친 아이들에게 할마 할빠의 사랑과 포용력은 세상을 수용하는 법을 배우는 기틀이 될 거라 믿는다. 또 우리가 그랬듯이 그 달달한 사랑을 먹고 자란 아이는 어른이 되어서도 가슴에 뜨뜻한 화롯불 하나 담고 잊지 못할 거다. 실은 힘에 부치는 노동이다. 의무는 아니니 물러나고 싶을 때도 있다. 아이를 돌보느니 뙤약볕 아래 밭을 매겠다는 말이 있듯이 육아가 쉬운 일이 아니다. 더러는 황혼에 육아 부담을 안고 우울증을 겪기도 한다. 하지만 건강이 허락하는 상황이라면 할마들은 대개 선택의 여지가 없고 홀로 된 할빠도 나서는 현실이다. 얼마 전 그런 할마와 할빠들의 정신건강을 위해 대책을 세워야 한다는 뉴스를 본 적이 있는데 기대해봐도 좋을는지. 그들이 지난 세월 얼마나 많은 일을 해내었는지, 지금도 하고 있는지 생각해 보면 뉴스 한 부분 차지했다가 사라져버리는 기사가 되어 서는 안될 것 같다. 대한민국의 지금을 일구어 놓고 쉬어야 할 나이에 다시 뛰는 것은 한 가정의 잡사를 넘어 진정 애국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자그마치 8년째다. 지난해는 딸애가 일 년 휴직해서 입학하는 아이를 돌보았다. 나도 자연스레 휴직에 들어갔다. 그 일 년은 내게 황금 같은 휴가였다. 아이들과 어미도 더없이 행복해했다. 딸애는 아이들이 등교하면 나머지 시간을 한점 허비 없이 쓴다. 도서관을 찾아가고 독서 모임에 참석하더니 바이올린을 배운다고 나섰다. 딸애도 나도 일 년이 너무 짧았다고 아쉬워하며 고달픈 일상으로 돌아왔다. 그 바람에 내가 하던 취미 생활과 수필 공부도 모두 접었다. 좋은 인연들과 만남도 줄어들고 자연스레 멀어졌다. 울안에 갇힌 새처럼 집에서만 맴도는 생활이 답답하다. 하지만 희생이 없이 이루어지는 것은 없으니 내 희생의 가치를 염두에 두면 그리 힘들지만은 않다. 주말은 온전히 내 시간이다. 어쩌다 오는 공휴일은 덤처럼 즐겁다. 나는 그 짬을 다른 소일로 더없이 즐겁고 소중하게 보내고 있다. 부산한 아침을 몰고 집을 나서면 학교 앞에는 아이들 반 어른 반이다. 십리 길을 걸어 언니 오빠 손을 잡고 학교에 다니던 때를 생각하면 격세지감을 느끼는데 세월 따라 변하는 풍경이 한두 가지랴. 허리 구부정한 할빠가 손녀와 주먹인사를 하고 있다. 고사리손과 온 인생을 손아귀에 틀어쥐고 달려온 역전의 용사가 노장이 되어 어린 손녀와 주먹을 맞대고 있다. 과거와 미래의 빛나는 조합이다. 할빠는 쭈뼛거리는 손녀를 달래다가 손을 잡고 기어코 교문으로 들어선다. 두 손녀 손을 잡고 내가 따르고, 뒤로 5층 할마가 손자의 신발주머니를 들고 따른다. 신호등 건너 급히 걸어오던 할마의 발걸음이 느려지고 신호등이 바뀐다. 하교할 때 틀림없이 교문에서 기다리겠노라 손가락 걸어 약속하고 들여보낸다. 아이들이 저들의 세계에 입성하고 왁자한 소리가 잦아들면 교문이 닫힌다. 마음이 짠하다. 무엇을 위한 것인지 아직 이해하지 못하지만, 저희도 나름 희생을 하고 있다. 어미 손이 그리운 아이 마음도, 저맘때 곁에 있어 주고픈 어미 마음도 잘 알고 있기에 모두 안쓰럽다. 교문을 나서면 짐을 부린 듯 마음도 걸음도 노곤하다. 어미 아비는 삶의 현장에서 숨 가쁘게 뛰고 있을 테지. 현재는 또 미래를 위해 저리 분주한 것이다. 어느 즈음에 가서는 미래가 현재가 될 텐데, 그때는 우리보다 더 나은 삶을 꾸리겠거니 하는 희망으로 힘들어도 내색 없이 나선다. 그제야 눈을 돌렸더니 매화나무가 연분홍 주둥이를 쏘옥 내밀고 종알거림이 푸지다. 종알종알 작은 말들이 커지면 향기로운 언어가 될 터이다. 톡톡 건드려 보니 손녀들의 종알거림이 들린다. 사랑스럽다. 손녀는 미래요, 딸은 현재이며 나는 과거다. 셋이 환상의 조화를 이루면 가정은 물론 사회도 최상의 결과를 낼 것이다. 할마 할빠들은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두 알고 있기에 아름다운 희생을 마다하지 않는 것이다. 나는 이 막중한 일에 동참하며 책임감을 느낀다. 쉴 새 없는 종알거림에 내 수고를 보태어 언젠가는 큰 울림의 언어로 터져 나오길 소망한다. 할마는 나의 또 다른 호칭, 나는 현재와 미래의 중심에 우뚝 서 있다. 이는 분명 축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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