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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는 힘이 셉니다

2021-11-16

문화 문화놀이터


문화예술 소통과 공감의 통로 [ㅊ·ㅂ]
문화는 힘이 셉니다
'인문학당 더불어숲'

    문화는 힘이 셉니다. 돈이 오가는 질서는 자괴감과 수치심을 동반하지만 책 한 권, 음반 한 장이 오가는 것에는 설렘과 감사함이 묻어 있습니다. 더욱이 문화예술의 의미에는 ‘나와 다른 것’ ‘낯선 것’ ‘보편적이지 않은 것’ 그러나 알고 보면 누구에게나 있을 법한 것들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힘을 지니고 있습니다. <더불어숲>은 점점 사나워지고 거칠어지는 현실에서 문득 발견되는 외로움과 그리움에 주목했습니다. 언제였던가 여린 속살에서 솟아오르던 환희의 기억들, 연못에 유영하는 금붕어의 반짝이는 빛깔에 설레던 소년의 기억들, 저녁노을이 강가에 부딪쳐 부서지는 그 빛깔에 까닭 모르게 배어 나오던 슬픈 기억들.
    진정 문화는 힘이 셉니다. 불과 100여 단어의 앙상한 언어 속에 갇혀 있는 부박한 현실 속에서 그 너머의 질서와 가치에 주목했습니다. 이르자면 단 한 번도 나눠보지 못한 소통의 언어들,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은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하자’라든지 ‘아침 햇살에 놀란 아이 눈을 보자’든지 언어는 풍요로워지고 사유는 맑고 깊어집니다.
 
인문학당 더불어숲 

    <더불어숲>은 시와 노래, 그리고 미술과 책을 통해 우리 안에 잊힌 정서의 흔적을 발견하는 일부터 시작했습니다. 우선 각자의 마음속에 혹은 오래된 기억 속에 머물러 있던 시하나 찾아와서 발표하고 그 시가 언제, 왜 자신에서 다가왔는지 혹은 말을 걸어왔는지 서로 이야기를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머뭇거리더니 채 5분도 지나지 않아 서로 자신의 기억을 끄집어내며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하고 있었습니다. 그 과정은 스스로의 치유 과정이었습니다. 정신없이 달려가던 삶의 속도들, 그 속에서 놓쳐버린 그 무엇, 신이 명령한 쉼표일지도 모릅니다. 어떤 이는 스스로의 기억으로 훌쩍이고 어떤 이는 자신과 전혀 다른 이의 이야기에 놀라다가, 끄덕이다가 이내 박수까지 이어지던 그 강좌들을 소개합니다. 
시가 된 노래, 노래가 된 시
    시가 된 노래나 노래가 된 시를 찾아 들려주고 그 의미를 살펴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진정 영혼이 살아 춤추는 시간이었습니다. 그 시에 얽혀있는 이야기와 그 노래를 좋아했던 시절, 사건들 그리고 지금. 그 시 혹은 그 노래는 자신에게 무엇인지 등등, 우리 시대의 모든 음유시인들이 등장했고 주어진 두 시간은 너무 짧았습니다. 서로 자신의 이야기와 노래를 들려주고 싶어 했고 시간이 너무 아쉬워 마감하고도 30분은 더 진행해야 했습니다. 참여자 모두는 평화의 빛깔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평화는 거대하거나 먼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지금, 여기’ 조용히 서로를 맑게 응시하며 숨 쉬는 여기에 있는 것이라는 확신했습니다. 어느 시인의 말처럼 ‘내려갈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보지 못한 그 꽃’처럼. 
 
左) 김민주 작가와의 만남    右)정윤수 선생님의 음악 이야기
 
암흑의 시대, 불온했던 노래들
    <암흑의 시대, 불온했던 노래들>은 암흑의 시대에 맞서기 위해 불온해야만 했던 노래를 감상해 보고 그 노래에 얽힌 이야기를 나눠보는 시간이었습니다. 남미 아르헨티나의 메르데스 소사, 중미 자메이카의 밥 말리, 북미 미국의 밥 딜런, 존 바에즈, 제니스 조플린, 지미 헨드릭스, 캐나다의 레너드 코헨, 그리스의 아그네스 발차 등의 노래를 감상하고 그 시대를 함께 공부했습니다. 우리는 이 분야에 전문가가 없었으므로 서로 자료를 찾아가며 공부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깨달을 수 있었던 것은 음악은 그 시대를 반영하기도 하고 동시에 그 시대에 영향을 준기도 했다는 사실입니다. 더욱이나 어두운 시대일수록 저항 음악들이 많았는데 문화란 힘으로 꺾을 수 없는 함성이고 숨소리 같은 것임을 새삼스럽게 느껴본 시간이었습니다. 
 
左) 이윤호 선생님의 철학 강좌    右)독서모임
 
변화를 주도했던 미술가들 미술 
    수업은 주로 변화의 선두에서 변화를 주도했던 작가와 작품에 초점을 맞췄습니다. 첫 시간은 르네상스 작품이었는데 주로 르네상스 3대 화가인 레오나드 다빈치, 미켈란젤로, 라파엘로의 작품을 감상하고 ‘왜 르네상스인가?’ 하는 질문에 대한 답을 함께 찾았습니다. 많은 이야기가 진행되었지만 무엇보다도 원근법을 포함하여 신의 질서에서 인간의 질서로, ‘보편의 구도’에서 ‘나 혹은 개별의 구도’로 이행하고 있다는 점을 발견하고 이는 중세의 정치, 경제적 변화와 맞물려 있음을 확인했습니다.
    두 번째 미술 수업은 인상파의 작품을 중심으로 감상했습니다. 마네와 모네, 쇠라, 세잔, 고흐, 고갱 등등이었죠. 작품 하나하나를 보며 그 안에 숨겨진 비밀을 찾아내고 그 의미를 되새겼습니다. 그 과정에서 알게 된 것은 인상파는 근대 시민사회의 출현과 미술의 대중화과 떼어 놓고 사유할 수 없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자연이나 현실을 그대로 반영하고 모방하는 미술에서 자신에게 반추된 이미지를 다시 현실에 투영하는 과정을 현실감 있게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즉 대상 그 자체가 아니라 나를 통과한 이미지로서의 예술인 것이고, 이는 현실에 대한 주체의 발견과 주체의 개입이라는 점에서 대단히 흥미로운 발견이었습니다. 고흐의 작품은 그 자체의 풍경이 아니라 분열된 고흐의 이미지라는 것이죠. 그러기에 고흐는 대상 그 자체의 색에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자신이 느끼고 있는 자신 안의 구도와 색깔을 표현한 것입니다. 이는 근대적 주체의 탄생이기도 하지만 앞으로 현대미술이 보여주게 될 분열되고 부품화된 현대인의 정서를 예견한 것이기도 했습니다.
 
左) 채인선 선생님의 그림책 수업    右)김동국 선생님의 미술 이야기

    세 번째 시간은 현대미술이었습니다. 흔히 개념미술이라고도 하는 그 알 수 없는 작품들을 살펴보는 것은 마치 수수께끼 놀이를 하는 즐거움을 주었습니다. 끊임없이 이어지던 ‘뭐지?’라는 질문들, 아마도 그것이 현대미술의 특징일지도 모릅니다. 정답이 없는 현실, 질문이 필요한 현실을 반영하는 미술, 그러기에 현대미술은 아무도 관람할 수 없다고 이야기하는지 모릅니다. 남성 소변기를 뒤집어 놓은 뒤 상의 <샘>은 20세기 가장 위대한 작품으로 선정되었습니다. ‘왜?’라는 바로 그 질문이 가능했기 때문입니다. 팝아트의 앤디 워홀이나 조이스, 말레 미치나 국내 작가로서 당혹스러운 질문을 던졌던 이불의 작품은 작품 그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이야기하고 싶은 개념, 질문, 문제의식에 의미가 있다고 볼 수 있었습니다. 
그 시대 그 책들
    다음은 하위문화로서의 <책 이야기>였습니다. 책은 수없이 바꿔야 하는 디지털 매체와 달리 한 번 만들어지면 그 자체로 온전한 그릇과도 같습니다. 하나의 우주입니다. ‘그 책들’에 주목했습니다. 그때그때 시류에 의해 규정되었을 책이지만 그 속에는 그 시대만의 숨겨진 표정이 들어 있습니다. 어떤 경우는 직접적이고 노골적으로, 어떤 경우는 깊게 숨겨놓은 채 살며시 뒷배경으로만 자신의 시대를 드러냅니다. 그러기에 그 책들은 그 너머에 시민들의 지층이 도도하게 흐르며 당대의 시대적 어젠다를 반영하거나 추동했던 ‘그 책들’이기도 합니다. 한순간의 단면을 잘라보면 역사가 언제나 그렇듯 부족하거나 부조리합니다. 그러나 긴 역사의 시간으로 보자면 그 시대가 그 책을 만들었거나 그 책이 그 시대를 만들었습니다.
 
左) 그 시대 그 책 전    右)정명섭 작가와의 만남

    역사를 가로지르는 작은 점들에 주목했습니다. 역사를 거슬러 파닥거리는 박동 소리들. 그 점들은 ‘먹구름 그걸 하늘로 알고 사는’(《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거짓 현실을 알리는 책이었고, 1970년대 압축적 근대화가 급속히 진행되면서 따라붙은 물신주의와 경직된 사회의 폭력성(《별들의 고향》) 가득한 현장에서 생을 지속시키는 난쟁이 혹은 나머지들의 삶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장치였습니다.(《난쟁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 《원미동 사람들》, 《노동의 새벽》) 그러나 동시에 그 안에는 한숨과 비탄뿐 아니라 슬며시 희망을 담아두기도 했습니다.
    그 사회의 성숙도는 시민의 교양 수준에 비례한다고 하죠.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이나 《우상과 이성》, 《무소유》는 효율성의 단일 가치에 매몰된 대한민국의 맹목적인 질주에 대해, 허구와 반지성에 대해 다시 돌아볼 것을 요청합니다, 최소한 인간적 가치가 무엇인지, 저녁이 있는 삶에 대한 숨 고르기일 터입니다.
    1970년부터 1990년대까지의 책들을 가지고 진행했습니다. 1차적으로는 지금 현실에서의 의미 있는 책들이었습니다. 국내에서 출판된 책이고 국내 저자들의 책을 대상으로 삼았습니다. 책 선정 과정에서 무엇보다 중요시했던 것은 당대의 표정이었습니다.
    이렇게 문화예술에 대한 강좌 및 토론을 통해 나름의 의미 있는 실험을 하였습니다. 무엇보다도 질주하는 현실에서 쉼표를 찍는 것, 더 나아가 서로 다른 생각들과 소통하며 ‘더불어’ 가는 것의 의미를 발견한 소중한 시간들이었습니다.
 
인문학당 더불어숲 이연호 대표
 
어떻게 이런 강좌를 기획하게 되었나요?
    세상 사는 일이 너무 정신이 없잖아요. 날마다 뉴스에서 엽기적인 사건들만 접하며 점점 더 사나워지는 것 같아요. 마치 사회 전체가 ‘분노조절장애’를 겪는 거 같잖아요. 그래서 다양한 문화예술을 통해 좀 숨도 쉬고, 놓치고 간 것은 없는지, 돌아보는 시간을 가져보려고 했습니다. 
이 강좌가 시민 개개인들에게 어떤 의미로 새겨졌을 거라 생각하세요?
    글쎄요. 단정할 수는 없지만 상당히 신선한 충격을 주었던 것은 분명합니다. 시를 발표할 때나 자신의 이야기를 할 때 울먹이기도 하고 서로 어깨를 쓰다듬어 주기도 하는 것을 보면 나름 의미가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무엇보다 일상 속에서 잊어버리고 살던 기억들과 언어들을 다시 불러올 수 있었다는 점에서 나름 성공한 기획이었다고 판단합니다. 한 번쯤은 자신을 돌아볼 수 있었으니까요. 지금도 꾸준히 나와서 함께 공부합니다. 마치 유럽 사회에서 공론장의 모태가 되었던 카페, 살롱, 아카데미가 다시 만들어지고 있는 듯합니다. 
앞으로의 계획은요?
    이런 강좌를 꾸준히 지속하려 합니다. 문화예술의 강좌가 밥을 주거나 돈을 주는 것은 아니지만 ‘부자 되세요’만 통용되는 시대에 결이 다른 삶의 가치와 의미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하니까요. 더욱이 요즘처럼 영혼까지 끌어모아 주식을 하거나 부동산에 탐닉하는 현실에서 이런 강좌들은 의미 있는 자극제가 될 겁니다. 지금 우리에겐 브레이크가 필요합니다. 정말 두 발 자전거를 타고 달리는 느낌이에요. 달리거나 넘어지거나 할 뿐입니다. 이제 세발자전거를 상상해야 합니다. 천천히 가더라고 풍경을 마주하고 느끼며 달리는 세발자전거 말입니다. 음악 이야기, 나무와 풀 이야기, 도시 공간과 건축, 음식의 역사, 몸의 철학 등등을 기획하려고 합니다. 우리의 영혼이 조금 맑아지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