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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 순대의 맛과 멋을 계승하다

2021-02-02

라이프가이드 라이프


LIFE 장인을 만나다
전통 순대의 맛과 멋을 계승하다
'육경희 장인'

    순대는 아주 오래전부터 조상들이 동물의 부산물과 채소로 만들어 먹던 음식이다. 영양소를 고루 갖춘 건강식이자 지역에 따라 다른 색을 띠는 로컬 푸드라 할 수 있다. 분식집 당면순대에 길들여진 당신에게 새로운 순대 이야기를 전한다. 


 
해외 원정도 불사한 순대에 대한 열정
    전통 순대의 맛을 전승하고자 노력하는 육경희 장인은 종갓집에서 나고 자랐다. 어릴 적 시골집에서는 제사나 잔칫날에 돼지를 잡는 일이 흔했고, 그때마다 순대를 만들어 먹었다. 어른이 된 후, 어릴 때 먹던 순대와 전혀 다른 당면순대가 시중에 더 많이 유통되는 것을 보며 육경희 장인은 궁금증과 위기감이 동시에 들었다. “당면순대는 1960~1970년대 산업화 시기에 수출되고 남은 돼지 부산물과 당면의 파지 부분을 사용해 만든 것에서 유래했다고 해요. 순대는 아주 오래전부터 조상들이 만들어 먹은 음식인데, 순대 하면 당면순대가 대표적으로 떠오르는 요즘, 이러다 제가 어린 시절 먹던 순대가 사라지는 것은 아닌지 하는 위기감이 들었습니다. 귀중한 문화유산으로서 전통 순대를 대대손손 물려줘야겠다는 사명감도 갖게 되었고요.” 육경희 장인은 전통 순대를 계승하고 이를 더 맛있게 만들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였다. 순대에 관한 자료와 문헌이 희박해 우리나라 고서뿐 아니라 중국 고서, 해외 문헌을 모조리 뒤지고, 세계 여러 나라의 순대와 유사한 요리를 연구하던 때에는 작은 단서라도 발견하면 해외 원정도 불사하는 등 순대에 관한 열정을 불태웠다.
    “순대 연구를 위해 국내뿐 아니라 해외도 많이 다녔어요. 이탈리아의 순대 장인을 만나려고 1년 넘게 연락하면서 몇 번이나 방문한 적도 있고요. 연구를 위해 먹기는 했지만 목에 넘기기 힘든 순대도 많이 만났죠. 간혹 위생이 열악한 곳도 있는데, 한 번은 베트남에서 상한 순대를 먹고 배탈이 심하게 난 적도 있어요.” 육경희 장인은 “지금은 웃으면서 이야기하지만, 돌이켜보면 순대에 미치지 않고서는 하기 힘든 일들이었던 것 같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순대에 대한 편견과 진실
    육경희 장인은 조선 시대 조리서 <시의전서>에 등장하는 순대 제조 방식과 거의 유사한 방식으로 순대를 만든다. 당일 도축한 신선한 돼지의 창자에 신선한 선지와 각종 채소, 향신료를 섞은 순대 소를 가득 채운 후 뭉근하게 삶는 것이다. 전통 방식으로 만든 순대를 접한 이 중 어떤 사람은 순대에서 이상한 냄새가 난다며 꺼리기도 한다. 육경희 장인은 “절반은 맞고 절반은 틀리다”라며 자세히 설명했다.
    “돼지 창자 중에서도 대창이나 막창의 경우 아무리 깨끗하게 씻어도 이취를 완전히 제거하기 어렵습니다. 그 창자의 역할 자체가 배설물 처리 기관이기 때문이죠. 하지만 소장(소창)을 사용하면 그런 이취가 거의 나지 않습니다. 소장이 신선할수록, 그리고 돼지가 건강할수록 냄새가 적습니다. 선지도 도축한 후 바로 쓰지 않고 오래 두면 쉽게 부패합니다. 냉장 시설이 잘 발달하지 않고 식재료 관리가 비교적 미흡했던 과거에는 순대에서 이취가 나는 경우가 다소 있었지만, 재료만 신선하고 제대로 관리하면 이취가 날까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세계인에게 ‘순대’가 각인되는 날까지
    영국, 프랑스, 스페인, 독일, 이탈리아 등 유럽에는 동물의 피나 창자를 활용한 요리가 남아 있다. 소시지의 기원도 찾아보면 지금처럼 간 고기를 넣은 형태가 아닌 ‘선지를 넣은’ 형태였다고 기록돼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 순대와 유럽 선지 요리의 가장 큰 차이점은 ‘첨가되는 부재료가 얼마나 다양한가’에 달려 있다.
    “유럽 순대에 선지와 곡물 혹은 부산물 정도가 들어가는 등 재료가 단순한 편이지만, 우리나라 순대의 경우 선지뿐 아니라 고기, 채소 등 다양한 재료로 만드는 편입니다. 물론 우리 전통 순대 중에서 재료가 단순한 것도 있지만, 어떤 순대는 비빔밥처럼 다채로운 재료로 만들어 건강한 한 끼 식사로도 안성맞춤이에요.”
    <순대실록>이라는 순대 기록서를 집필할 정도로 순대 연구에 정성을 다하는 육경희 장인은 계속해서 다양한 전통 순대를 복원하고 미래 순대를 발굴할 예정이다. 그의 최종 목표는 ‘우리 순대를 보존·계승하고 나아가 전 세계에 순대를 알리는 것’이다.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기에 사명감을 갖고 순대 연구에 임하고 있습니다. 연구를 위해 해외에 방문했을 때 가장 아쉬웠던 것은 우리나라 순대를 ‘코리아 블러드 소시지’, ‘코리아 블랙 푸딩’ 등으로 설명하는 일이었습니다. 일본의 스시처럼, 태국의 똠얌꿍처럼, 한국의 ‘순대’라고 하면 세계인이 모두 그 음식을 떠올릴 수 있을 때까지 전 세계에 순대를 알리고 싶습니다. 김치처럼 순대가 우리나라 대표 음식으로 부상할 수 있도록 순대를 계속 연구하고 알리기 위해 더욱 노력할 것입니다.”
[TIP] 육경희 장인이 전하는 순대 즐기는 법
    궁합이 잘 맞는 식재료를 곁들이면 순대를 맛있게 즐길 수 있다. 돼지의 부산물인 만큼 육류의 소화를 돕는 새우젓, 향을 더하는 부추를 곁들여 먹으면 좋다. 더불어 깻잎은 장인이 손꼽는 순대와 최고 궁합을 이루는 식재료. 깻잎 향이 순대 냄새를 완화하므로 누구나 ‘엄지 척’ 하는 궁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