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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천장 이야기

2023-06-14

문화 문화놀이터


삶의 풍경이 머무는 곳
[수필] 천장 이야기
'글.박종희'

    알 수 없는 무엇이 나를 훑고 지나는 것 같아 눈을 떴다. 칠흑같이 까만 밤, 내가 잠든 시간에도 누군가는 잠들지 않는다는 것을 처음 알았을 때 쉬이 잠들 수 없었다. 세월이 좋아지니 쥐 선생들도 진화하는지. 잠결에도 시나브로 느껴지는 천장의 감시가 몽상을 불러왔다.
    나를 따라다니며 재빠르게 렌즈에 담는 것은 천장이다. 눈을 뜨며 가장 먼저 맞닥뜨리는 천장을 보고 씩 웃어준다. 지난밤 내 잠버릇을 그대로 보았을 것에 아부라도 하고 싶어서다.
    의심의 눈초리로 올려다보면 별것 없다. 그저 네모다. 눈에 띄는 그럴듯한 장치도 없다. 그런데도 보통 배짱이 아니다. 웬만한 것은 한 번쯤 눈감아 줄 만도 한 데 아니다. 이제껏 살면서 밴댕이 소갈머리처럼 이렇게 고집스럽고 융통성 없는 것은 못 본 듯싶다. 두루뭉술하게 어설픈 곡선이라면 따지기라도 해보련만 자로 잰 듯 반듯한 모양에 기가 눌린다. 하나,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고 쏘아주고 싶다.





    한때, 나도 네모에 빌미를 준 적이 있다. 갑자기 쓰러지신 친정어머니가 돌아가실 때까지 마음이 절룩거려 제정신이 아니었다. 어머니와 연결된 모니터 수치에 따라 내 감정선도 흔들렸다. 육중한 철문이 굳게 닫힌 중환자실의 상황은 예측이 안됐다. 방금 전까지도 정상이던 혈압이 불과 몇 분 만에 내리꽂으면 형제들을 불러 모았다. 사방에서 혼비백산한 가족들이 도착하면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모니터의 숫자는 제자리로 돌아왔다. 마치, 자식들이 보고 싶어 숫자를 조작한 것 같아 보이는 그곳에서는 방금 웃던 여자가 금세 주저앉아 흐느껴도 별스럽지 않아 보였다.
    집에 돌아오면 손 까닥거릴 힘도 없었다. 안주인이 손을 놓으니 집안도 헝클어져 엉망이었다. 궤도를 이탈한 내 행동을 가족들도 낯설어했는데 천장이야 오죽했을까. 옷도 벗지 못한 채 새우처럼 등을 구부리고 아침을 기다리던 나를 천장은 배려하지 않았다.
    그가 모르는 내 내밀한 생활이 뭐가 있었을까. 정신 놓고 걷다 넘어져 부러진 손목에 코끼리 다리만 한 깁스를 했던 일. 사소한 일에 격앙해 남편한테 목소리를 높이던 일. 불면의 밤이면 알코올을 홀짝이던 순간조차도 그냥 지나치지 않았으리라. 아마, 에멜무지로 한 행동도 그대로 담아두었지 싶다.
    우리가 네모에 감시당하며 살게 된 것이 언제부터일까. 세상이 모두 관찰자라고 하면 지나친 과장일 까만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주인공이 되는 일이 허다하다. 하찮은 일로 구경거리가 되는 것은 정치인이나 유명 연예인만이 아니다. 사회가 만든 안경을 쓰고 마음대로 상대를 재단하는 사람들 때문에 바닥으로 내밀리는 이들을 누가 책임질 것인가.
    코로나19 특보로 넘쳐나는 뉴스가 연일 뜨겁다. 0번 확진자의 감염 경로와 동선 공개를 놓고도 지청구를 한다. A 씨와 노래방을 가고 커피숍을 갔다는 둥, 건수만 잡으면 신상까지 탈탈 털어내는 천장들 때문에 요즘은 정말 모니터 마주하기가 두렵다. 무엇이 진실인지 헛갈리고 쏟아지는 가짜 뉴스에 정신이 아득해진다. 확인되지 않은 사연들이 천장을 도배하는 사이에 코로나는 계절을 들어먹었다.





    어릴 때 친정집에도 방마다 천장이 있었다. 종이 도배지 위에 외풍으로 생긴 얼룩이 요실금 자국처럼 번져 있던 천장. 덕지덕지 덧발라 누렇게 바랜 천장을 향해 육 남매는 손가락으로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면서 꿈을 키웠다.
    사방에 어둑살이 내리고 밤이 깊어지면 안방 천장은 아침을 맞는 듯 갑자기 부산스러워졌다. 우르르 몰려다니는 쥐 선생들은 도통 겁이 없었다. 쉬이 잠이 오지 않아 동생과 비밀 이야기라도 나누는 날이면 쥐들도 천장 아랫동네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찍찍 소리를 내며 참견했다.
    그런데 매번 신기한 일이 벌어졌다. 28색 크레파스가 갖고 싶어 일부로 크레파스를 부러뜨리고 꽃무늬가 그려진 예쁜 비닐 책 커버를 사고 싶어 달력을 갖다 버렸다고 지난밤에 동생과 나눈 이야기를 어머니는 다 아시는 눈치였다. 내가 어떻게 알았느냐고 여쭤보면 어머니는 세상엔 비밀이 없다며 일침을 놓으셨다.
    나중에 알았지만, 비밀을 지키겠다고 철석같이 약속한 동생이 그새를 못 참아 눈뜨자마자 어머니한테 일러바친 것이었다. 그런데 연필 살 돈으로 자야를 사 먹고 몽당연필에 침을 묻혀 쓴다고 했던 동생 비밀은 쏙 빠져 있어 부아가 나는데 어머니는 말하지 않아도 내 속을 다 알고 있다는 듯이 빙그레 웃으셨다.
    그때는 쥐가 듣고 전해 주었다는 어머니의 말씀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는데 어머니 나이가 된 이제야 고개가 끄덕여진다. 그 시절이 그립다. 잠도 없이 우르르 몰려다니며 우리의 이야기를 듣고 전달한다고 쥐 선생이 누명을 썼지만, 요즘은 그 역할을 네모가 하는 것 같다. 싸울까 봐 어린 딸들을 갈마들며 감싸주던 지혜롭고 현명한 어머니처럼 서로의 실수를 따뜻하게 보듬어주면 얼마나 좋을까.
    마스크를 사러 약국에 가려다가 놀라 다시 천장을 올려다본다. 전염력이 강한 변이가 나왔다는 소식에 놀라 마스크 사 모으기에 급급한 나를 천장은 어떻게 생각할까. 아마도 좋은 말은 안 나올 성싶다. 그런다 한들 어쩌랴. 아직은 마스크로 차단하는 것 외에 별다른 대안이 없으니.
    연일 늘어나는 확진자 소식만큼 가짜가 기승을 부리는 요즘, 소곤소곤 자매들이 나눈 비밀 이야기를 맛있게 훔쳐 먹고 몰려다니던 쥐 가족이 살던 천장 아래서 부모님과 함께 소박한 꿈을 꾸던 때가 사뭇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