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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마기행
내륙의 바다, 청풍호로 모여드는 네 개의 물길 그리고 비봉산
'충북레이크파크 르네상스 : 제천2'

청풍호는 제천지역 충주호를 이르는 이름이다. 청풍호가 생기기 전, 옛날에는 절경으로 알려진 청풍천이 흘렀고 제천의 등마루인 금수산, 신선봉, 동산, 작성산으로 이어지는 산줄기에서 학현, 능강, 무암계곡이 실핏줄처럼 흘러 신선계를 이루고 동천에서 사람들을 살게 했다. 청풍천은 청풍호에 잠기고, 학현, 능강, 무암계곡의 하류 또한 옛 마을과 함께 물에 잠겼다. 물 아래 옛 풍경을 상상하며 물 위에 남은 지금의 절경을 찾아다녔다. 용의 형국인 청풍호가 봉황을 닮은 비봉산을 품었다. 비봉산 꼭대기 전망대에서 사방으로 퍼져나간 산하를 보는 가슴이 벅찼다.

비봉산 꼭대기 전망대에서 본 풍경. 사진 오른쪽에 작성산이 보이고 멀리 제천 시내가 아주 작게 보인다



청풍호가 비봉산을 품은 그곳은 용이 봉황을 품은 형국
청풍호가 비봉산을 품고 있는 모습은 용이 봉황이 사는 둥지를 품고 있는 형국이다. 단양, 제천, 충주를 흐르는 남한강과 그 지류들, 충주댐으로 생긴 충주호 청풍호의 모습을 전체적으로 조감하면 그 형국이 그렇다. 청풍랜드에서 본 비봉산은 깃을 펼친 봉황이다. 그러니까 청풍호가 품은 비봉산은 봉황이 둥지에서 날아오르려 깃을 펼친 모습이다.
조선시대에도 비봉산이라 했다. 매봉이라고도 불렀다. 청풍호가 생기며 만든 풍경은 비봉산이라는 이름이 더 잘 어울린다. 청풍호와 비봉산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둘이 함께 있어야 그 풍경이 완성 돼, 용과 봉황의 이야기가 후대에도 생생하게 이어질 것이다.
비봉산 정상 전망대에 오르는 방법은 케이블카와 모노레일이다. 모노레일을 탔다. 최고 경사도 45도의 모노레일을 타고 비봉산 정상 전망대에 도착했다.
케이블카가 올라오는 쪽 풍경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물태리 마을 뒤로 망월산이 솟았다. 망월산은 물태리 마을 뒷동산이다. 이름 그대로 마을 사람들이 달맞이하던 산이었을 것이다. 청풍문화재단지가 들어선 곳도 망월산이다. 망월산성 터가 그곳에 있다.
망월산 동쪽 기슭에 청풍호가 된 옛 청풍강(남한강)을 건너던 나룻배를 탈 수 있는 나루터가 있었다. 강 건너편에는 조선시대에 도화동천이라고 이름난 동네가 있었다. 도화동천 마을 계곡에는 취적대, 와선대 등 이름난 절경이 있었다. 지금의 청풍면 도화리가 그곳이다. 도화동천 남쪽에는 또 다른 동천인 능강구곡이 사람들을 모이게 한다. 옛 절 정방사가 그 산에 있다. 도화동천 북쪽에는 무암계곡이 있고 그 계곡의 시원에 무암사가 있다. 이들 계곡과 동천을 품은 제천의 등마루 금수산, 신선봉, 동산, 작성산 산줄기를 비봉산 전망대에서 한눈에 볼 수 있다.
풍경은 비봉산에서 사방으로 퍼져나간다. 월악산, 소백산, 치악산까지 바라볼 수 있는 이곳은 봉황이 깃을 펼친 비봉산이다.
고교천과 금월봉
비봉산 전망대 북동쪽 청풍호 물 건너편 북진리 마을에서 북쪽으로 청풍호 물길을 거슬러 올라가면 고교천을 만난다. 고교천으로 흘러드는 실핏줄 같은 여러 물줄기 중 하나를 따라 그 시원인 금성면 동막리에 도착했다.

금월봉



수백 년 살고 있는 느티나무가 마을 초입에 수호신처럼 서있다. 그 동쪽에는 노구라니골이라고 불리는 마을이 있었다. 늙은 개가 앉아있는 형국이라서 붙은 이름이란다. 동막리 마을 초입에 놓인 작은 다리에서 이름 없는 작은 도랑과 느티나무 고목이 있는 풍경을 본다. 그 물길을 따라 내려가다 보면 월림교 부근에서 또 다른 작은 물줄기들이 모인다. 도랑과 도랑이 모여 냇물이 되는 곳이다. 그 물줄기는 금성면 포전리에서 조선말과 대한제국 때 일제와 싸운 의병 이강년 선생의 이야기를 품고 흘러온 고교천 본류와 만나 청풍호로 흘러든다. 금월봉은 고교천이 청풍호와 만나는 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금월봉은 땅 위에 놓인 거대한 수석 같다. 기기묘묘한 모양의 크고 작은 바위 봉우리들이 금강산을 축소한 것 같다. 금월봉 일대가 ‘태조 왕건’ 등 여러 드라마 촬영지가 된 이유이기도 하다. 금월봉 서쪽 산 아래가 청풍호다.
무암계곡과 봉명암
무암계곡을 거슬러 올라가는 길, 계곡이 앙상하다. 무암계곡의 최상류 무암사에 도착했다. 신라시대에 창건됐는데 창건 연대는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고, 극락보전 명문기와에 조선시대 영조 16년에 중수했다는 기록이 있다는 안내판의 내용보다 절집으로 들어가기 전 거대한 바위 위에 뿌리내려 자라는 거대한 나무, 그 한 장면으로 무암사가 마음에 남았다. 산줄기와 산줄기 사이 숲과 숲 사이로 청풍호를 겨우 보고 마른 계곡을 따라 내려갔다.
무암제일제수지를 지나 물길을 따라 더 내려가면 무암계곡의 물줄기는 청풍호를 만난다. 그곳에서 하늘에서 봉황이 내려와 앉아 울다갔다는 전설이 깃든 봉명암을 보았다. 봉황이 둥지에서 깃을 펴는 형국의 비봉산이 생각났다. 두 전설이 하나로 이어지는 순간이었다.

左)봉명암과 느티나무 거목. 무암계곡이 청풍호로 흘러드는 곳에 있다 右)도화교에서 본 학현계곡 하류. 학현계곡 물줄기가 청풍호로 흘러든다



하늘로 솟구친 거대한 바위도 예사롭지 않지만, 느티나무 거목 두 그루가 그 바위를 감싸고 있는 모습은 더 신비로웠다. 봉명암에 다가갔다. 바위 밑동에 새끼줄로 금줄을 쳐놓았다. 바위에 한자가 가득 새겨져 있었다.
마을 사람에게 알아보니 봉명암은 예로부터 마을의 안녕과 주민들의 평안을 빌며 마을제사를 올리던 곳이다. 매년 정월 초이튿날 마을 동서남북 4곳을 돌며 마을제를 올렸다. 마을 동쪽 입구 봉명암, 서쪽 입구 방우리, 남쪽 입구 북진, 북쪽 입구 곰바위가 마을제를 올리던 곳이었는데, 방우리와 북진은 청풍호에 수몰됐고, 곰바위에서는 별도로 제를 올린다고 했다.
봉황의 전설이 깃든, 예로부터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는, 하늘로 솟구친 거대한 바위와 느티나무 거목 앞을 지난 무암계곡 물줄기는 이내 청풍호와 하나 된다. 청풍호 물기슭을 걸었다. 멀리 비봉산 꼭대기가 전설처럼 보였다.
학현계곡과 취적대
무암계곡 남쪽 또 하나의 계곡은 조선시대에 도화동천이라고 불렸던 학현계곡이다. 동천이란 신선이 사는 곳 또는 산과 물로 둘러싸인 경치 좋은 곳을 말하는데, 학현계곡이 그런 곳이었나 보다.
학현계곡은 단양과 경계를 나누고 있는 동산 감오고개에서 서쪽(제천 쪽)으로 흘러내리는 물줄기다. 청풍면 학현리와 도화리를 지나 청풍호로 흘러든다.
학현계곡이 도화리로 접어들며 취적대 풍경을 남기고 도화교 아래를 지난다. 그 물길 어디쯤에 조선시대 사람 이계원이 ‘도화동천제일강산’이라는 글씨를 새겼고, 오도일은 ‘취적대’ ‘와선대’라는 글씨를 새겼다고 한다. 그만큼 경치가 좋았다는 얘기다.
도화교 위에서 바라보는 계곡에 기이하게 빚어진 바위절벽이 보인다. 옛 사람들처럼 무슨 이름 하나 붙여도 될 만한 풍경이다. 그곳을 지난 물길은 청풍호로 흘러든다.
능강계곡과 용주폭
능강계곡은 학현계곡 남쪽에 있다. 능강계곡도 동천이었다. 옛날부터 아홉 가지 경치에 이름을 붙여 능강구곡이라고도 불렀다. 쌍벽담, 몽유담, 와운폭, 관주폭, 용주폭, 금병대, 연자탑, 만당암, 취적대가 그것이다.

능강계곡 푸른 물에 햇볕이 반짝인다



쌍벽담, 몽유담, 와운폭, 관주폭은 청풍호에 잠겼다. 용주폭도 온전한 옛 모습을 잃고 그 일부만 남았다. 진주 같은 물방울이 튀어 오르는 모습에 용주폭이라 했다. 능강교 위에서 용주폭을 볼 수 있고 아래로 내려가 물가에서도 볼 수 있다. 여름이면 용주폭 주변으로 사람들이 많이 모인다. 보기에도 좋고 놀기에도 좋기 때문이다.
계곡을 거슬러 오른다. 물길이 좁아지고 크고 작은 바위가 소나무와 어울린 풍경이 펼쳐진다. 소나무 그늘 아래, 그럴싸한 바위 아래서 탁족을 즐기며 쉬기에 좋은 곳이다. 계곡에 비치는 햇빛에 윤슬이 인다. 물에서 솟은 바위 위에 크고 작은 돌로 돌탑을 쌓았다. 그런 돌탑이 계곡 곳곳에 보인다. 계곡에 나뒹구는 돌멩이가 누군가의 소원으로 쌓여 정갈하다.
능강계곡 물길과 사람이 오르는 길이 나뉜다. 계곡 물길에는 금병대, 연자탑, 만당암, 취적대가 있고, 사람이 오르는 산길 끝에는 절벽에 지은 절, 정방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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